개념이 모호하고 이를 측정·평가할 수 있는 수단 없으면 공허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아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인 창조경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개념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말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창조경제를 “융합형·선도형 경제를 지향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에 바탕을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창조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기술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벌써부터 알맹이 없는 정책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은 “여당도, 청와대도, 국민도 모르는 창조경제의 미궁에 빠졌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인사청문회를 마친 최문기 후보자에 대해 “창조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미래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창조경제를 직접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며 “창의성을 우리 경제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융·복합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의 완화와 창의 인력 양성, 그리고 R&D(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M&A(인수합병) 시장과 엔젤투자를 활성화하고 벤처 1세대들이 재창업하는 엔젤투자자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설명으로 창조경제 개념의 모호성은 사라졌는가? 패러다임의 전환, 융합, 인센티브 강화, 규제 완화 등은 과거 정부에서도 줄곧 강조됐던 것인데 이것이 과연 창조경제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사회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믿을 만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지식을 통해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경험적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지식은 이성과 경험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회과학은 이론과 실제를 통해 작동된다. 그 중심에 개념(concept)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은 경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개념을 만드는 것에 의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념이란 어떤 현상, 한 대상, 그러한 대상의 속성들을 설명해주는 추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지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개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통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개념이 의미를 규정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 소통은 사라지고 혼돈만 남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개념에 대해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의(definition)를 내리는 것이다.

또한 모든 개념은 경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경제성장’이란 개념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아무리 대통령이 직접 설명을 해도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모호하고 이를 측정·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공허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는 창조경제의 구체적 실행 수단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키로 했다. 하지만 개념이 명쾌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첩경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의 ‘세계화’, 이명박 정부때 ‘녹색 성장’의 실패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지난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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