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할 수 있는 조직문화, 여성 리더 있어야

통계청의 2012년 여성경력단절 통계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20.3%인 197만8000명이 경력단절을 경험했고, 이 중 56.4%가 30대다.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과제임을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간접 학습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과거 여성들이 가정영역을 움직일 수 없는 상수로 놓고 직업의 양립 가능성을 고민했다면 지금 여성들은 직업을 상수로 설정한 후 가정의 양립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이 여성만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한 합계출산율 1.4라는 국가적 생존 위기를 풀기는 불가능하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여성 근로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라고 인식한다면 고용주는 여성 근로자 자체를 기피하게 되기 때문에 직업영역이 더 중요한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출산 기피 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감당하는 것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이 다음 세대 재생산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모든 성인이 함께 지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녀양육 지원 서비스, 부모 시간 확보, 양육비용 지원정책뿐 아니라 함께 키우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은 가족의 기본적인 기능이자 권리로서 다음 세대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누리는 성취감은 책임감이고 부담인 동시에 특권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의 양육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바로 아버지의 자녀 양육 참여다. 제도 시작 당시인 2001년 2명에 불과하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2년 9월 기준 136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가 증가했다. 아직은 적은 수이지만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남성의 육아휴직에는 직장에서의 경력관리와 소득수준 유지문제 이외에 남성이기에 경험하는 또 다른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자녀양육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은 특정 연령대의 여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모든 성인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누군가 변화를 이끄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실 관리자 입장에서 여직원의 임신 소식은 여러 가지 고민을 던지는 과제다. 임신 기간의 단축 근무 및 노동강도 조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의 대체인력 확보 문제, 대체인력의 훈련 및 업무 성과를 고민하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사회가 변화하고 정책적 지원이 있다 해도,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가오기까지 현실과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면 먼저 선배로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경험했던 여성 리더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보면 어떨까. 아직은 조직 내에서 자리 잡은 여성 리더가 많지 않지만 분명히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그 지위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버텨온 여성 리더들이라면 여성 후배들이 어렵더라도 고난을 뚫고 올라와주기를 기대하면서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슈퍼우먼의 역할 모델이기보다는 다수의 남성 관리자들에게 조직에서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용감하게 조언하는 선배의 모습일지 모른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성 직원들에게 자녀 양육이란 누구나 평생 함께 지고 가야 하는 행복한 책임감임을 넌지시 일러주고 고민 상담을 들어주는 상사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더불어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결정한 후배의 공백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역으로 이를 악물고 일했던 선배들이기에 후배들이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것만은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내게 꼭 필요했던 나의 경험을 공감해주는 여성 선배가 바로 나라는 것은 참 멋진 선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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