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는 온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또 골목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랐다. 요즘에는 어렵게 사는 아이들일수록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몸이 더 망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보리밥에 된장과 김치만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더 건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난할수록 나쁜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어 이래저래 몸이 망가진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에 가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시간이 많아 위장과 골격까지 나빠진다.

물론 가난한 집 아이들만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원을 전전하기 바쁜 아이들에게도 학교 운동장은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다. 골목에서 들리던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밥이 귀하던 시절보다 이 시대 아이들의 영양 상태는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몸이 더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럿이 어울려 노는 놀이의 세계를 잃어버리면서 아이들의 정신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적 성숙도도 낮아진 것 같다. 놀이 속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아이들은 그 갈등을 통해 성장한다.

아이들을 놀려야 한다는 건 근본주의자들이나 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로부터 귀족들은 자녀들이 몸을 잘 놀리도록 키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들은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또는 격구 같은 고난도의 운동을 하면서 성장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귀족학교로 알려진 학교들은 대부분 승마나 골프 같은 스포츠를 체육 교과로 편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스포츠를 통해 협력하는 능력을 기르고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 정말 중요한 배움은 몸을 통해 몸에 새겨지는 배움이다.

물론 돈을 들여야만 몸을 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승마나 골프처럼 세련된 스포츠는 아니라 하더라도 옛날에 아이들이 즐겨 했던 고무줄놀이나 비석치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훌륭한 스포츠였다. 오늘날 놀이를 대신하는 수많은 오락거리들은 돈이 많이 들지만 원래  놀이다운 놀이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 법이다. 같이 놀 친구만 있으면 된다. 아이를 놀리기 위해 다시 놀이학원을 보내는 이 시대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텅 빈 시간이 아닐까. 시간과 친구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아이들은 어떤 곳에서든 스스로 놀이를 창조해낸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음식만큼이나 필요한 양식이다. 때로는 밥보다 더 소중하다. 난독증 같은 증상도 몸의 중심을 잡는 감각이 둔할 때 생기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몸과 정신은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밀접히 연결돼 있다. 자기 몸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더 쉽게 터득한다. 놀이는 소통을 훈련하는 장이다. 놀이의 세계에는 좌우가 없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경계 넘나들기, 삶의 온전함 체험하기. 아이들이 진정으로 성숙하기를 바란다면 놀이의 세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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