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입학철이 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의 심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을지, 대학교 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성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지, 비뚤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짓누른다.

아이들도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친구를 괴롭히고 왕따시키고 때리고 고문하고,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도 서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학교에 교육 기능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일찍이 ‘학교는 죽었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경제수준이 세계 10위권에 달하지만 학교 환경은 극단적인 입시 전쟁터가 되어 학생도 학부모도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이제라도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한 데서 시작된다. 

첫째, 적어도 ‘학교는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실행해야 한다. 학교폭력 피해로 자살한 대구 권모군의 어머니는 가해자에 대해  “사과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만큼 벌을 받고 책임지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원칙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강조한다. 이 어머니의 애끊는 아픔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전 방위적인 노력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 또 폭력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피해자나 담당 교직원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

둘째, 경쟁의 기준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획일화된 입시 경쟁 교육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학교폭력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학교는 시험 점수만을 목표로 하는 ‘경쟁 전사’를 키워내고 있다.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좌절하는 패자로 남는다. 또한 이런 교육 체제는 미래를 이끌어나갈 창의성이나 인본주의적 통찰, 공감적 능력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파괴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양하고, 성장하는 속도와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교육은 아이들의 그 다양한 욕구를 잘 채워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성리학의 대가인 율곡 이이 선생은 1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27세에 9개의 과거에 급제하고 ‘구도 장원’이라 불렸던 천재다. 반면 퇴계 이황 선생은 29세 때에야 과거에 급제하여 50세 이후에 학문의 절정을 완성한 대기만성형 천재다. 천재도 이렇게 성장의 모양과 결이 다르다. 천재성이 발휘되려면 그 특성에 맞추어서 뒷받침돼야 한다. IT 천재 스티브 잡스도 뛰어난 상상력과 집중력이 결실을 맺기까지 그의 독특함을 이해하고 인내해준 환경이 있어서 성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학교는 평화로우며 모두의 개성이 존중되는 배움터여야 한다.

새 학년을 앞두고, 한편 기대에 부풀어 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학교가 행복한 곳이 되기를 진정 바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