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고은은 소설 ‘1인용 식탁’에서 혼자 밥 먹기 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1단계는 커피숍이나 빵집, 패스트푸드점, 학원가 음식점에서 시작한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이고 밥이라기보다 서둘러 한 끼 때우는 형식을 띤다. 2단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한정식 집, 3단계는 결혼식 및 돌잔치, 4단계는 고깃집, 횟집으로 구성된다.

높은 단계에 올라갈수록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반찬의 가짓수도 늘어나 젓가락, 숟가락을 들고 움직여야 하는 범위도 늘어난다. 2인 이상만 주문되는 품목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밥 먹기는 상식과의 대결이 되고 세상의 시선을 넘어서는 일이 된다. 혼자 밥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때로 우리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윤고은 소설에 나오듯 혼자 밥 먹기 학원이 실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학원은 없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에 수긍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 혼자 밥 먹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사라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물리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두 사람 이상 식사를 할 땐 메뉴 선택부터 협상의 대상이 되며 밥 먹는 속도까지 상대방과 조율해야 한다. 식사 예절이라는 말도 생겨났고 코스 요리라는 절차도 생겨났다. 이 예식들은 말 그대로 식사가 사회적 행위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둘이 먹는 것뿐만 아니라 혼자 먹는 행위도 그 자체로 일종의 사인(sign)이 된다.  두 사람 이상이 식사를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다 보니 혼자 먹는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식사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표식 중 하나가 된다. 막상 주변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지만 먹는 당사자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묵묵히 빠른 속도로 혼자 밥을 먹는다. 식사에 따르는 사회적 역기능을 단숨에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일부러라도 혼자 식사를 하고 싶다. 하루 일과에 난 유일한 시간의 틈을 상상력 없이 밋밋한 식단을 따라가느니 잠시 그 시간만이라도 선택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의외로 혼자 밥 먹는 시간 동안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식사를 하면서 식사가 맛이 있네, 없네, 주변 어딘가에 다른 맛있는 식당이 있으니 내일은 그곳으로 가자는 소모적 대화도 필요 없다.

밥을 먹고 있는 나, 게다가 혼자 식사하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자신과 만나고 있는 개인이다. 원래 나르시시즘이라는 개념은 내 안에 나를 위한 힘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고, 대화하고, 관계를 갖다보면 그 에너지를 내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 쓰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은 내가 그동안 쌓았던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체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가끔은 말문을 닫고 조용히 나 자신의 에너지를 모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책, 신문을 들고 부지런히 밥숟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저 적막한 식욕이야말로 살아가는 것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살기 위해 밥을 먹으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 어쩌면 그 식사야말로 가장 외롭고 적막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적막함이야말로 나를 보게 하는 지름길 아니었던가? 때론 적막한 식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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