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는 남한 면적의 절반 정도 되는 국토와 인구는 50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상당한 수준의 문화 국가다. 이 작은 나라에 12개의 국립과학박물관이 있고, 470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으며 50개 이상의 박물관이 있다. 게다가 브라티슬라바는 과거에 헝가리 수도(1541∼1784)였기 때문에 헝가리 최초의 대학인 아카데미 아이스트로 폴리타나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주위에 있는 유명한 음악 도시인 오스트리아 빈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영향을 받아 브라티슬라바에서도 음악의 향취를 많이 느낄 수 있다. 여름에는 쿨투루네 레토(Kulturne Leto)라는 문화행사가 있고 10월 초에는 1946년부터 개최된 유명한 브라티슬라바 음악축제가 열린다. 사실 이곳은 과거에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방문해 음악적인 영감을 얻은 곳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도 바로 브라티슬라바에서 작곡됐다고 하며, 리스트도 9세의 나이에 이곳에서 연주하며 피아노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두산 벨라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는 “슬로바키아 최초의 오페라인 코바치 비에란트(Kovac Wieland)를 쓴 미쿠라시 스흐네이테르-트르나브스크(Mikulas Schneider-Trnavsky)와 이안 레보슬라브 벨라(John Levoslav Bella) 등이 슬로바키아 국민음악의 선구자들로 추앙되고 있다”고 말한다.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의 한 명으로 꼽히는 에디타 그루베로바(Edita Gruberova)가 오스트리아 음악가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 브라티슬라바 출신이라는 점과 트럼펫 협주곡으로 유명한 요한 네포무크 후멜(Johann Nepomuk Hummel)도 오스트리아 음악가로 알려져 있고 출생지도 헝가리라고 돼 있지만 엄연히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난 이곳 음악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이 지역은 여러 나라들의 영토에 편입됐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문화예술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20세기 슬로바키아 음악의 중요 인물로는 에우겐 수혼(Eugen Suchon)을 들 수 있지만 사실 슬로바키아 국민은 전통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더 강한 것 같다. 전통음악의 원류는 슬라브족과 유럽인들의 민속음악이며, 과거 이 지역을 다스렸던 모라비아제국의 예배의식에서도 그 전래를 찾을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민속음악들은 노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는데, 이 민요들은 대개 일할 때 들판에서 흥겹게 부르거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르는 노래들이다. 전통악기로는 목관피리의 일종인 푸자라(Fujara), 백파이프 형태인 가이디(Gajdy) 그리고 양치기의 피리인 콘코브카(Konkovka)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49년 창단된 슬로바키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주제를 가지고 콘서트를 많이 엽니다. 슬로바키아 필하모니 합창단도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하며, 슬로바키아 체임버 오케스트라도 저희의 자랑입니다.”
목동들이 양이나 염소를 칠 때 사용하던 민속악기 푸자라를 대사관에서 혼자 있을 때 연주하기도 한다는 두산 벨라 대사는 필자 앞에서 직접 이 악기를 연주해보이기도 했다. 푸자라는 유네스코에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까지 된 아주 유서 깊은 악기다. 정말 바위 위의 목동처럼 대사의 조용한 피리소리는 복잡한 광화문 서울 시내를 잠재울 만큼 값지고 소중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음악이 마음을 정화시키며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공통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