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위 할아버지들의 세대까지 정확한 햇수를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전체 가구 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렇다 보니 남아있는 마을 청년들 역시 어릴 적부터 허물없이 어울려 놀러 다니며 재미난 추억을 많이 만들었던가 봅니다. 이날 가져온 고야를 먹으며 자기들이 어렸을 때는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다 따버려서 이렇게 노란 열매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느니, 여름이면 강가의 어떤 돌 위에 가서 다이빙을 했다느니 하며 ‘내가 왕년에…’ 하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연날리기를 하는 때가 돌아오면 전구를 잘게 빻고 집에 있는 온갖 재료를 동원해 실에 먹여 손이 다치는 줄도 모르고 연싸움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자니, 지방에서 자랐고 자연을 벗 삼기 좋아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산으로 강으로 꽤나 많이 다녔다고 자부했던 저임에도 왠지 나눌 추억거리가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그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 대단한 무용담을 듣고 있을 수밖에요.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동네 꼬마는 형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사실 한국이나 네팔의 도시에 비하면 이곳 마을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아직 건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갖 추억을 회상하던 형들의 눈에 요즘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부족하기만한가 봅니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재미없게 놀게 된 이유는 모두 돈 때문이 아니겠어?’라고 수실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손쉽게 살 수 있는 요즘 아이들, TV와 친구가 되면서 자연에서의 놀이와는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수실의 생각입니다. 듣고 있던 제가 ‘그러면 많은 것이 부족했던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아 그럼! 그때 얼마나 재미있었다고.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걸!’이라며, 마치 재미있게 놀았던 그때로 돌아갔다 오기라도 한 표정을 짓습니다.
희망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 위에 나 있는 길과 같다.
사실 길은 어디서 시작되는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면 길은 만들어진다.
이렇게 뿌리가 단단한 친구들이야말로 함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이라고 믿어봅니다. 네팔의 작은 마을에서 또 하나의 희망을 만나게 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