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를 치르지 않은 초·중·고생에게 여름방학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대학은 벌써 방학이 시작됐다. 캠퍼스 곳곳의 게시판에 빼곡하게 붙기 시작한 방학 중 외국어 특강, 자격증 시험 대비 강좌, 고시 준비 특강, 심지어 운전면허 학원 안내까지 각종 광고지들이 방학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제 막 1학기 공부를 마무리한 대학생들이 또 다른 공부를 위해 방학이라는 제3의 학기에 돌입하는 것이다. 광고지들은 이 제3의 학기에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취업은 물론 인생의 행로가 달라질 것처럼 학생들을 자극한다.

학생들은 마음이 급하다. 학생들을 몰아가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살을 빼고, 몸매를 가꾸고,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가 지닌 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방학이 이른바 내적·외적 스펙 관리를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을 위해 실시하는 장기간의 휴가’라는 방학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할 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전공 분야는 물론 다양한 영역의 책을 탐독하는 시간을 누리라고, 세상을 둘러보고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라고, 스펙 쌓기가 아닌 진정한 자기 발전을 모색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해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할 정도로 그저 누구나 거쳐 가는 교육과정이 돼버린 우리의 대학 현실을 고려할 때, 그런 잔소리는 터무니없는 헛소리처럼 들린다.

여기에 패스트푸드점에서, 백화점에서, 공장에서, 혹은 공사장에서 방학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차마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방학 중 일을 해서 돈을 모아놓지 못하면 다음 학기의 등록은 물론 생활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물리적·사회적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방학 중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치요, 스펙은 빈부격차의 좌절감을 안겨주는 냉혹한 현실이다. 더욱이 대학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혹은 알고도 말하지 못했던 대학의 치부가 드러나고 대학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그러나 복잡할수록 혹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대학이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이론과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라는 애초의 거창한 존재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대학은 사회인으로 출발을 앞둔 학생들에게 주어진 거의 마지막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멀리 가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더욱이 인생이라는 큰 그릇을 채우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준비는 자기에 대한 성찰과 그를 통해 형성된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이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스펙 쌓기는 단기 처방에 불과할 뿐 멀리 가기 위한 준비가 될 수 없다.

좋은 세상과 희망찬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해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지만, 분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부디 조급해하지 말기를,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멀리 보기를. 방학이 끝난 후 한층 더 성숙해진 얼굴로 학교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