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와 이번 주는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중간시험 기간이다. 두 주 동안 세 아이 모두 시험을 치렀는데 각각 몇 시에 깨워달라는 요구가 달라 맞추기가 힘들었다.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겠다는 큰아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겠다는 둘째 아이, 평소보다 한 시간만 일찍 깨워달라는 셋째의 요구에 맞추려니 내가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두 주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번 깨워 잘 일어나면 좋은데 한 시간씩 씨름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더 이상 깨울 수 없으니 알아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고 시험 기간 동안 엄마의 해방을 선언했다.

대뜸 둘째 아이가 “엄마, 친엄마 맞아?”라고 대꾸한다. 친구 엄마는 시험 기간만 되면 친구 방의 침대를 빼고 밤새 옆에서 잠이 들지 않게 지켜주는데 빨리 자라고 하는 엄마가 어떻게 친엄마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방영된 광고 멘트를 읊어주는 것으로 나는 다시 부모가 됐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라고 하던데. 나는 너를 자면서 꿈을 꾸게 해 주니까 부모가 맞지?

오랜만에 지인과의 만남에서 평소에 술을 좋아하던 분이 그 날따라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더니 중간에 자리를 일찍 떴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번 주가 아이 중간시험 기간이에요. 빨리 가서 아이 시험 범위의 내용을 한번 훑어봐 줘야 하는데…. 아빠인 제가 수학과 과학 담당인데 내일이 수학 시험이거든요.”

요즘은 엄마는 물론 아빠들도 시험 기간에는 약속을 정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눈치 없이 날짜를 잘못 정했나 보다. 부모의 시험 대리전이 진행되는 듯하다. 우리가 조부모가 되는 10여 년 후에는 손자들의 시험 지원으로 조부모들의 약속이 미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웃었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부모의 역할도 재정의되고 재구조화되고 있다. 부모와 아이의 신체적 돌봄이나 정서적 상호작용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학습 지원자나 기회 제공자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이 과장되고 있다. 학습 지원자로서 부모의 역할은 함께 숙제나 과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부모-자녀 간의 추억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우리 부모들의 관심은 과도하게 시험 성적에 집중돼 있다. 시험에 임박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나누는 경험은 결코 즐겁지 않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사춘기를 겪으면 부모-자녀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시험과 성적을 제외한 부모와 자녀 간의 공통 관심과 추억거리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기말고사 때에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 학부모 노릇을 해야 되는가? 좋은 학부모가 되려면 같이 잠을 자지 말아야 하는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그리고 수면 부족의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아이의 시간 관리 방법을 조언해 주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10년도 더 남은 막내의 대학 입학 때까지 한 학기에 두 차례 옆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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