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 자신이 한심해요.” Q. 안녕하세요? 올해 17세인 여고생입니다. 제 기분을 정말 주체하기가 힘들어요. 한없이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주변사람들에게 화를 내고요. 처음엔 그냥 다혈질인가보다 했는데 기분이 갑자기 우울해지니 조울증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학교도 가기 싫어요.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의욕이 없다고 해야할 지, 무기력하다고 해야 할지. 할일이 많은데도 미뤄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짜증나요. 저 우울증인가요? “조바심내지 마세요. 기차는 꼭 옵니다.” A. 심한 감정기복, 자기비하, 죄책감, 불면증, 두통을 포함한 신체통 등 전체적인 정황으로 보아 우울증의 범주 안으로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거 봐, 나 우울증 맞잖아!” 하고 스스로 함정에 빠지면 안 됩니다. 우울증이든 뭐든 우리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에 속한 파도와도 같은 것이지요. 파도가 수없이 일어나고 스러지더라도 바다는 늘 그렇게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 전체에 대한 큰 신뢰를 바탕으로 우울증을 밀려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파도쯤으로 여기세요. 무엇보다 이 점을 명심하셔야 해요. 지금, 열일곱이란 나이는, 한창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예컨대 존재의 본질, 가치, 의미, 사랑, 죽음과 그 후…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유달리 허망감, 무의미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생각하는 힘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좌절반응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꿈도 있고 야망도 있지만 고작해야 학교 수업, 야간자율학습, 학원… 이밖에 달리 할 일이 없으니 산들 죽들 큰 차이 있으랴, 싶고요. 다 멀쩡해 보이지만 옆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 다 나와 같이 힘들 거야, 하면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마음을 지니도록 해 보세요. 조바심 낸다고 해서 기차가 빨리 오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느긋하게 군다고 해서 빨리 오지도 않습니다. 올 때 오지요. 그리고 반드시 오고요. 이 비유는 대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거긴 버스 정류장으로 돼 있지요. 그 책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내친 김에 책 몇 권 소개합니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팀 보울러의 <리버보이>,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김려령의 <완득이>, 이금이의 <소희의 방> 아직, 열일곱 소녀지요. 혼자 힘으로 부칠 것입니다. 지금의 심리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엄마에게 정직하게 말씀드리고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우울증 고치려 한다, 뭐 이런 딱딱한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 없어요. 내 인생의 멘토(mentor)를 만난다, 생각하고 자상하게 상담 하실 수 있는 분을 찾으세요. 미루어서 될 일이 아니라면 지체 없이 상담을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힘내세요. 상담자 : 강용원 청소년한의학연구원 원장 / <안녕, 우울증> 저자 강용원 원장은 법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사십대 중반에 한의대에 입학해 한국인에게 맞는 의학을 연구했다. 마음향기한의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청소년 우울증에 집중하고자 청소년한의학연구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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