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나게 가부장문화 전복시키고 여성정체성 회복하자”
페미니스트 필자 40여명 참가. 지식인 남성 성희롱, 여성주의적 사주팔자, 지위 공존화

구름이 힘차게 흘러가는 광활한 하늘을 품어안듯 당당히 배를 내밀고 있는 잉태한 여성을 표지로 책장을 넘기면 등장하는 충격적 이미지들.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동상 위에 이순신을 밀어내고 올라앉은 거대 가슴·둔부·다리를 지닌 여성상, 신보수주의 남성언론을 대표하는 일간지의 전광판에 뉴스와 광고 대신 박힌 문구 ‘여자들이여 웃자! 뒤집자! 놀자!’등.

국내 첫 페미니스트 계간지로 상당한 주목과 격려를 받은 <이프if>(발행인 윤석남) 여름 창간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낸 상징적 시도들이다. <이프>는 박미라 편집장의 말처럼 “코가 깨지든 피가 나든 우리 여성들끼리만이 아닌, 사회를 향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절실했다. 이것이 곧 여성운동의 실천인 것이다”는 인식에서 출발,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창간 준비 과정에서부터 줄곧 매달려 왔다. 그리고 그 결론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꽤나 다양하지만 한가지 공통되는 것은 어쨌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새롭게 살고 싶다’는 것. 이를 대전제로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대안적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지속적으로 해내자는 것이 <이프>의 기본이념이다.

이같은 방향아래 꾸며진 창간호 특집은 ‘뜨거운 감자’인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여성의 몸과 여성의 육체에 관한 남자들의 모든 강제와 억압적 참견”을 ‘성희롱’이라 규정짓는 가운데 문화예술매체의 공공연한 성희롱은 길거리에서 한여성이 당한 성희롱과 비교하기가 무색할만큼 강력하다는 것이<이프>의 주장이다. 류숙렬(문화일보 생활부차장), 유지나{동국대영화학과 교수), 이선희(문화일보기자)등의 필자진이 송기원·이문열·김원우·김창섭등 한국 남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근중심주의를 조목조목 분석하여 균형감각을 상실한 그로테스크한 단면을 부각시킨 것을 비롯, 컴퓨터 통신망의 가상공간, 방송, 영화, 언론, 문단, 화단 등 문화전반에 걸쳐 ‘예술’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희롱의 실태를 담았다. 이런 현실이 문화상품 생산자의 사생활이 작품에 은연중 투영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 주목을 끈다. 특히 <나쁜여자가 성공한다>의 저자이자 본지 칼럼니스트인 김명숙씨가 ‘<선택>의 작가 이문열 서생에게- 한 조선조 여인의 일갈’이란 제목으로 쓴 글은 서간체 형식으로 생생한 현실감과 당당한 분노를 담고 있어 이채.

반면 페미니스트 영화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현승 감독은 ‘남자의 성경험’난에 ‘같이 자는여자, 같이 잠들수 있는여자’라는 제목으로 순결이데올로기에 얽매여 매춘등을 통한 부자연스러운 성관계를 맺을수 밖에 없는한국의 미혼 남녀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로 인해 섹스가 현실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지 못한채 파편화되고 분절된다는 것이 필자의 안타까운 분석이다.

또한 연재 ‘사주팔자 뒤집어보기’는 <페미니즘과 유교> 등의 논문을 발표한 철학박사 이숙인씨가 담당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첫회에선 중국 춘추전국시대 군주의 딸로 태어나 깊은 학식으로 <주역>의 철학적 해석에 영향을 미친 목강을 소개한다. 민담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구성한 <색녀열전>(수박두리그림)은 솔직하게 성적 흥분을 표현했다가 초야에 소박을 맞은 노처녀를 주제로 순결이데올로기가 건강한 자연본능을 압박하는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꼬집었다.

여성학을 전공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이경미씨의 ‘내 몸안의 에로티시즘, 자위에 대하여’도 여성의 성에 관련돼 시선을 끄는 부분. 22세의 여성셋이 독백하는 형식으로 각자의 성경험을 얘기하며 진행되는데, 남자친구와 패팅하는 얘기는 공공연히 하면서도 자위에 대해선 금기시된 화제거리로 여기는 억압된 성의식을 다룬다.

‘이프 옷이야기’에선 <문화일보> 이형숙 기자가 쟌다르크부터 전설적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과 배우 마들렌느 디트리히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바지에 얽힌 수난사를 펼친다. 바지는 여권운동의 한 상징이 되어왔고 남성과 여성이 법적평등을 확보한데 비례해 옷에 있어 남녀 차이가 좁혀져왔음을 얘기한다. 필자는 90년대 패션계의과제는 캐리어우먼룩 개발임을 들어 여성의 보다 활발한 사회진출을 점치고 있기도 하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가 연재하는 ‘이주향의 세상읽기’도 시선을 끄는 지면. 그 첫회로 황미나의 순정만화 세계를 분석, 과장된 사랑으로 인한 인간성 과장과 권력세계의 왜곡을 다루면서 황미나식 사춘기적 사랑이 현실로 가는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 광고에서 한껏 입을 벌린 여자가 외치는 ‘나 시집간다’를 ‘나 독립한다’로 바꾼 광고 패러디나 ‘높게 살자, 여자여!’란 한 자동차광고를 ‘이프가 뽑은 좋은 광고’등으로 소개한 지면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들.

미국의 <미즈>, 독일의 <엠마> 등의 페미니스트 잡지를 연상 시키는 구성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여성주의에 입각한 낯설고도 통쾌한 지적 자극과 의식고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이프>. 이 계간지는 진전된 의식을 지닌 페미니스트 필자를 40여명이나 창간호에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저력으로 미루어 ‘이프’라는 제호가 상징하듯 지속적인 변화 발전으로 무한대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부정형페미니즘’으로써 21세기에 한껏 개화할 여성주의적 세계관 전파에 당당히 한 몫을 해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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