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을 가리켜 ‘음식 사막’(food desert)이라고 한다. 이미 1980년대에 영국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그 배경도 일본과 거의 비슷하다. 동네 슈퍼마켓들이 폐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형 매장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대자본의 힘으로 많은 물량을 취급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업소들을 작은 가게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그런 매장이 들어서는 곳은 기존의 시가지가 아니라 외곽의 값싸고 넓은 땅이다. 어차피 승용차를 타고 와서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구 도심지에 사는 노인들은 접근하기가 너무 어렵다.
음식 사막의 문제에 봉착한 영국의 어느 도시에서는 고민 끝에 절묘한 해법을 내놓았다. 상점들이 문을 닫은 썰렁한 동네를 재개발하여 인근 대학의 부속 기숙사를 세운 것이다. 갑자기 몇 천 명의 젊은이들이 거리를 오가게 되니 자연히 상권이 살아났다. 다시금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노인들이 장보기가 쉬워졌다. 그리고 은퇴자 마을처럼 분위기가 침체되었던 지역에 활기가 돌아 노인들의 생활도 밝아졌다. 일본에서도 ‘마을’을 회복하는 방향에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고 어려운 일들을 서로 도와가면서 풀 수 있도록 공동체성을 되살리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로 치닫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나마 보존되어 있던 마을을 완전히 해체하고 고층 아파트를 세워 익명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재개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옆집에 사는 이웃끼리 서로 알지 못하고,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이 사라져 버린다. 노인들은 집 바깥에 나와 느긋하게 쉬거나 동네를 배회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립과 소외는 깊어지고, 운동 부족으로 육신은 더욱 쉽게 노쇠해지며, 말벗과 역할의 부재로 치매 같은 질환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온 산업화의 한 가지 결과가 ‘음식 사막’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부실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GNP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그 지표에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에, 우리의 기나긴 노후 생활을 안전하고 넉넉하게 떠받쳐 줄 생활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외형의 성장으로만 내달려온 속도를 잠시 늦추고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