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jpg

성수동에 본사를 둔 광원고무공업은 옵셋, 피혁, 코팅, 윤전기 고무

롤러와 철롤러 제조업체다. 피혁공장에서 가죽을 눌러주거나 염색해

주고 인쇄시에는 잉크가 먹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롤러를 초정밀

기술로 연마해 크기별로 제조하여 신문사나 인쇄업소 등 4백여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롤러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회사”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전정희(49)

사장은 여사장에 대한 편견을 거두는 데에 성공한 기업인이다. 71년

도에 설립된 광원고무공업의 사업자금은 전정희 사장의 결혼비용을

탈탈 털어 마련된 것이다. 함도 생략한 채 신혼여행도 남산 한바퀴

를 도는 것으로 끝내고 청계천에서 남편과 사업을 시작했다. 전정

희씨의 반지를 잡혀 월급을 줄 정도로 어려웠던 사업은 얼마 안되어

부도를 내고 말았다.

1년 후 왕십리에서 다시 재기할 때 남편이름으로 되어 있던 회사를

전정희씨 앞으로 변경하고 주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회사 살리기에

앞장섰다. 그는 웨건을 타고 청바지에 티셔츠차림으로 직접 수금을

하러 다니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차림으로 거래업체를 방문하면

수위실에서부터‘야, 이리 와 봐’는 보통이었지만 수금률은 90%였

다. 수금을 하고 나면 전정희씨는 항상 담당자에게 식사대접을 했

다. 그 때는 정장차림으로 깎듯하게 대우를 해 주었고 전정희씨를

다시 보게 된 거래처 직원은 그 다음부터 6개월짜로 끊어주던 어음

을 2개월로 끊어주었다.전정희씨는 사업가로서의 자기 관리가 철저

하다.

“옷차림도 전략이다”라는 상업광고 카피를 늘 머리에 새기고 있

다. 항상 똑 부러지는 말투에 술자리에서도 절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장’이 아닌 ‘여성’으로

보려는 남자들의 속셈을 자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명절 때가

되면 전정희씨는 거래업체에 잊지 않고 선물을 한다. 그러나 남들처

럼 ‘사과상자’나 고가의 물건이 아니다. 음식맛 뛰어나기로 유명

한 전주가 고향인 그가 직접 만든 신토불이 음식을 보낸다. 남대문

에서 직접 천을 떠서 만든 보자기에 싸서 보냄으로써 다른 어떤 선

물보다 보내는 사람의 정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전정희씨가 거래

업체에 보내는 따뜻한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사업 초창기, 자금회

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신에게 돈을 주는 것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더 안심이겠다”며 두말없이 돈을 맡긴 고마운 분이

있었다. 그때 받았던 은혜에 대해서는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보답

을 했고 한번 맺은 인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 하나의 이

유. 공업 분야는 남성고유 영역으로 여기는 편견이 강해 도통 끼어

들 틈이 없었다. 그들과 똑같이 냉정하게 나가기보다는 ‘정’을 느

끼게 하는 전략을 씀으로써 ‘광원고무공업 전정희’를 인식시키고

자 한 것이다. 그래서 수금 후에 식사대접이 어려울 때에는 손수건

한 장이라도 꼭 챙겼다.

“기업은 내 것이 아니다” 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전정희 사장은

본인의 월급은 물론 회사 재무구조, 경영현황 등을 직원들에게 모두

공개한다. 80년대 초 일요일까지 근무를 해야 할 만큼 공장이 바쁘

게 돌아갈 때 그는 직원 점심까지 도맡아 해먹였다. 한 여름에도 찬

물은 배탈날까봐 보리차를 끓여 먹였다. 지금도 공장을 들를 때면

과일상자를 항상 챙겨갈 정도다. 상을 당한 직원들을 직접 찾아 다

니는 열성을 보이자 직원들도 여성 사장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되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인다. 공장내 먼지도 많고 각

종 화학약품 때문이다. 이천 곤지암에 있는 공장에 공기정화시설을

갖추는 등 공해유발업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국문학을 전공한 전정희씨는 화공과를 나온 남편 김종원(57)

씨와 아들(28.뉴욕대 경영학과 졸. 군복무 중), 딸(26. 오토데스크코

리아 그래픽 디자이너)을 두었다.

‘별이라도 딸 수 있는 여자’로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은 유학시절

항상 빠듯한 생활비를 보내줘도 불평 한 마디없는 착한 마음을 가지

고 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딸에게 “여자도 막 뛰어다녀야 한다.

대학나왔는데 왜 노느냐”라며 자기 일을 가질 것을 권유한 전정희

씨는 “광원고무공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어요. 자질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생각입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남편과는 같은 회사에서 만났다. 당시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전정희

씨를 보고 그의 남편은 “저 사람과 결혼하면 같이 사업할 수 있는

재목이겠구나”라는 생각에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남편 김종원씨

는 현재 그를 도와 기술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 80년도에 일본의 한

회사로부터 기술합작을 제의받았을 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약자는 언젠가는 잡아먹히게 마련이죠. 기술합작으로 시작했다가

통째로 회사를 ??수도 있는 위험이 보여 미련을 버렸습니다.”

그는 되도록이면 은행과 멀리 지내려 한다. 은행돈에 의지해 성장

한 기업의 말로를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

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쌓은 신용과 능력으로 받아야지 부실 기업이

인맥을 이용해 은행돈을 끌어다 쓰는 기업풍토는 당연히 없어져야

합니다.”

전정희씨는 여행을 좋아한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그에게 좋은 활력소를 제공한다. 지난

여름 미국여행을 다녀온 그는 또다시 하루 3-4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롤러업계의 최고’가 되기 위한 전쟁을 치루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