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 한국사람으로 전세계의 매스컴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

민주노총의 권영길위원장이었을 것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 각국의 신문

은 물론 ‘헝가리 폴란드등 구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신문들이 인터뷰

와 총파업기사를 내보냈다. 필자는 당시 동구 4개국을 방문하면서 이 신문

들을 모아 온 적이 있다. 방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민주화의 견인

차 역을 맡았던 ‘카리타스방송’은 물론 이탈리아의 유수한 라디오방송이

명동성당 뒤편 천막주위에서 통역을 내세워 권위원장을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총파업 승리후 이같은 국제적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로

권위원장이 7년간 파리특파원을 거치면서 익힌 불어와 영어실력이

한 몫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권위원장이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만든 ‘국민승리21’이라는 조직

의 15대 대통령후보로 추대됐을 때 우선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

다. 같은 언론노련위원장을 훌륭히 이끌어간 공로가 기억에 남아있

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라를 책임질 대통령후보에 이러한

개인적인 느낌만으로 좋아할 수는 없다. 기존후보와 무언가 다른 점

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이랄까 일반서민들珦?따뜻한 교감이랄까.

권위원장은 공식추대 다음날부터 벌써 이미 출마를 선언했던 기존

정당후보들과 같은 반열에 서서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다. 다음날

한겨레신문의 인터뷰기사를 비롯해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오늘’에

서 30분간 소신을 밝혔으며 KBS라디오에서는 봉두완씨의 아침시사

프로에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권후보가 그간 밝힌 출마의 변은 이렇다. 기존 정치세력과는 ‘다

르다’는 점이다. 4명의 기존 정당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세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수대연합이나 DJP연합이나 모두

보수세력에 추파를 던지는 셈이다.

그러나 권위원장은 “땀 흘려 일하는 국민들의 나라만들기에 앞장

서겠다”라고 밝혀 노동자를 중심으로한 진보세력의 대표임을 명백

히 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앞으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현 집권당이 노동당이고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북구제국, 민주화이후의 동구제국등도 거의 사민

당, 사회당, 민사당등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들이 번갈아 정권을 잡

는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사’자나 노동당의 ‘노’자만 나와도 시뻘건

색깔로 榕횟쳬求?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어려운 실험이 아닐 수 없

다.

이승만정권 때 진보당의 조봉암당수가 사형을 당했고 4.19이후 내

각제때도 신석초씨등의 진보정당 실험은 있었다. 이후 사회당계통으

로는 지금 국민회의 김한길 의원의 부친인 김철 당수와 전두환 정권

때 끼워주기로 의원에 당선된 고정훈씨등이 명맥을 이었다. 92년 14

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김낙중, 이재오, 장기표씨등이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민중당은 자진 해산했다. 김씨는 간첩혐의로

감옥에 가 있고 이씨는 15대에 신한국당으로 말을 갈아타 국회의원

에 당선됐으며 장씨는 연구소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분단구조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의 발자취는 문자그대로

‘형극의 길’이었다. 자금과 조직의 열세, 국민들로부터의 질시, 정

보 수사기관의 감시와 탄압으로 거의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처럼 때

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각오한 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전시대

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다. 때문에 처음으로 대통령후보에 노동자대

표가 나설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권위원장은 몇번의 인터뷰에서 “득표는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밝

혔지만 내심 연초의 노동법 대파업때의 열기를 기대할 지 모른다.

결과야 어떻든 우리나라도 진보세력이 독자후보를 낼수 있을 만치

변했다. 신선한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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