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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홍합〉은 여수의 한 홍합공장을 배

경으로, 거기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한 생명력을 생생히 그린 작품

이다.

“본대로 옮겨놓았을 뿐인데 상까지 받게되어 그네들의 삶을 소설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홍합〉은 87-88년까

지 홍합공장에 다녔을 때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입니다. 거기서 일

할 때도 그랬지만 글을 쓰면서도 그네들의 삶에서 살아가는 스타일

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스스로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래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웃어제끼는 그들에게서

무한한 생명력과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홍합〉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투성이의 소유자들이다.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어 시댁식구를 뒤치닥거리해야 하는 승희네,

보살같은 생김새에 마음 씀씀이도 후덕하지만 변변치 못한 남편에게

맞고 사는 쌍봉댁, 집안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내팽개치기로 으뜸인

남편과 사는 광석네, 주먹질에 사내랍시고 위용만 부리는 최씨 부인

강미네 등 하나같이 홍합공장에서 날품이라도 팔아야 자식새끼 하고

굶어죽지 않을 여인네들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은 걸쭉한 입담과 질펀한 웃음 그리고

자식이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들 삶의 어느 구석을 봐도 웃음이 나올

건덕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눈가에 시퍼런 멍을 해가지고도 그

들은 소녀처럼 티없는 웃음을 웃습니다. 바로 ‘고통의 터널을 통과

한 웃음’을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강하게 버티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은 잘 모르겠고, 또 평생 공부해야할 과제이지만, 그들은 삶을 거대

한 틀로 이해할 때 원래 별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체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창훈 씨의 시선은 늘 보잘 것 없는 인생들에게 쏠려있다. 전작

〈가던 새 본다〉 역시 중심에서 철저히 소외된, 혹자는 패배자의

삶이라 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씨의 미덕은 그러한 누추한

삶들을 세밀하지만 애정어린 시선으로 포착, 쉽게 건져지지 않을 삶

의 건강함과 진정성을 찾아낸다는 데 있다.

그가 소설에서 그리는 만큼이나 그의 이력 역시 평범한 것은 아니

었다. 대학시절 휴학하고 오장어잡이배를 타기도 했고, 공사판 잡부

에 포장마차 사장 노릇도 해보았다.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싸가지

없이 살지 말자’는 인생관을 지키기 위한, 세상과의 갈등을 어른스

럽게 풀어보기 위한 방법이었다.

“자식한테밖에 삶의 희망을 걸 수 없는 가난한 여인들의 삶이 참으

로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거는 것은 ‘강미네’처럼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과감하게 이혼하는 여성에게서죠. 또 자신의

연애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승희네’같은 아낙에

게서죠.

평생 권리라고 해봤자 주민등록증 하나 받는 게 유일한 혜택인 그

들이 악착같이 따지고 덤벼들어 자기들 몫을 챙기는 것, 우리가 흔

히 아줌마들의 그악스러움이라고 하는 그것이 저는 오히려 90년대식

민주화운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비주류의 인생을 그리며 ‘씩씩한 촌놈’으로 ‘촌

놈 문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촌에 살고 있고 촌에 남을 작가

답게 서울 작가 흉내내지 않고, 서울 갈 때 과천서부터 기지 않고,

그의 표현대로 ‘착하고 야물딱지게’.

〈최이 부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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