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자율화는 일부 계층만을 위한 제도
국공립·사립 분리해 별개의 기준 제시해야

새정부 교육정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유를 통한 학교교육의 다양화와 질적 변화’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학교 자율화’와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그리고 ‘대학입시와 운영의 자율화’ 등의 정책에서 정부가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각자 자유를 행사해서 자기 몫을 취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데, 왜냐하면 단위 학교들은 자율화 조치를 통해서 저마다 다양한 교육 내용을 선보일 것이고, 여기서 학교들은 학부모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저마다 필연적으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니, 그 각축 과정에서 학교의 질은 자연 향상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른 바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논리’에 따른 해법이다. 얼핏 호소력 있게 보이는 이 해법의 문제점은 이 정책이 대변하는 자유의 속성을 해부하면 잘 알 수 있다. 

이 정책에 따르면 판에 박힌 교육 틀을 벗어날 수 있으니, 또 가고 싶은 학교에 갈 수도 있으니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이 부드럽게 충족될 가능성은 없다는 점에서, 왜냐하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는 필경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또 서열화된 대학입시 체제가 엄존하는 이 나라 형편에서 이러한 자유는 곧장 입시교육을 위한 기회로 사용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이런 판에서 승산은 대부분 사회 상층부나 차 상층부의 몫으로 떨어지게 되리라는 점에 대해서, 즉 그러한 자유가 사회 모든 계층을 위해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식자들 간에 별 이견은 없다.

새 정부 당국자들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같은 표제를 내걸고 새로운 형태의 학교들을 말하기에 앞서 현재 입시 명문고로 전락해 버린 특목고가 ‘어떤 상황을 지시하고 있는지’를 통찰해야 한다. 이런 식의 교육정책은 공교육의 기본 축을 현저히 훼손하지 않고는 결코 구현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과거의 평준화 체제를 고수하는 것이 옳은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 나름대로 몇 가지 다른 생각이 있다. 이를테면 과거 체제 아래서는 정부 주도적인 상의하달식 지시적 행정체계와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인해 단위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상의 자유를 위한 여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등 고질적인 병폐가 있었다든지, 혹은 학교 체제상 일관성을 결여했다든지 하는 문제도 있었다.

말하자면 평준화 체제가 다만 전체의 절반 정도에, 그것도 도시권역을 중심으로 적용되었다든지, 국공립과 사립을 평준화 체제 안에 하나로 묶어놓았다든지, 종교계 사립학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든지 하는 점이다.

일관성이 있으려면 평준화 체제를 나라 전체로 확대하든지, 아니면 ‘국공립’은 평준화로 ‘사립’은 자유롭게 하든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 없이 과거의 체제를 단순히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식을 나는 “모든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과거의 논의 수준을 넘어서’ 좀 더 진보된 형태의 교육이 가능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요약하고 싶다.

이는 이를테면 평준화 체제를 기본 축으로 할 경우 단위 학교에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일정한 범위의 자유’를 부여한다든지, 만일 국공립과 사립을 구분해서 다룰 경우 사립에 대해서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교육의 ‘자유’를 위한 별개의 기준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식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일정한 조건 하에서’의 자유란 입시교육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자유이자 학생들의 개성적 삶의 자유라는 형태로 경험되어야 할 무엇을 뜻한다.

따라서 그러한 자유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를테면 학교의 행·재정상 운영의 투명성이나 학생들의 개성적 삶과 인간 형성을 위한 학교의 독특한 철학, 학교의 철학적·종교적 배경, 교사들의 철학적 준비도 같은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상의 자유는 먼저 이런 전제하에서 부분적으로 그리고 차츰 확대된 형태로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일단은 현재의 ‘자율학교’ 형태 수준에 머물러 문제를 천착해 보는 것이 선결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논의에서 핵심적인 것은 사안을 다만 시장논리에 따라, 즉 경쟁원리에 따라 보지 말고 교육의 논리를 통해서, 즉 경쟁보다는 협력과 공생공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시각에서(이를테면 북유럽 학교 풍속도들이 보여주듯)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학입시체제’를 교육의 논리에 따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한 국가의 적절한 조정 역할은 필수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그 정반대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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