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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년 '삼성여왕' 자리에 오른 신정재씨. 97년 연도상 시상식에서

서울 지역 1위상을 차지한 임근자씨

삼성생명은 1957년 창립된 이래 수입보험료 10조 9천1백65억원(’

96년 12월말 기준)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생명보험회사다. 삼성생

명은 미국 지가 96년 선정한 50대 기업중 하나로 세계 17위

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한 세계적인 조직이다. 삼성생명은 1만여

사원 가운데 대략 50%정도가 여성인력이며, 설계사의 수도 국내최

대인 6만8천80여명에 이른다.

또한 전체 소장인원의 30%인 5백여명이 여성소장이며, 과장급 이

상 사원이 1백40여명, 여성 이사까지 있으니 삼성생명은 여성 인력

의 힘으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여사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삼성생명이 설계사나 여사원들을 위

해 ‘어린이 집’을 운영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체적으

로 소프트볼 모임, 꽃꽂이 동호회 등 1백75개 동호회가 결성되어

남녀 사원이 함께 여가를 즐긴다.

‘삼성여왕’ 2연패 신정재 팀장 96, 97년 2회 연속 삼성생명 연

도상 여왕 자리를 고수한 신정재(43)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고대 영

문과 졸업후 시티 은행에서 14년간 근무했던 그는 91년 조기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게 됐다. 일에서 손을 뗀지 1주일도 便?우연한 기

회에 설계사시험을 보게 된다. 시티 은행 재직시절 관리직에 답답함

을 느꼈던 그는 영업 전선에 뛰어들며 활력을 얻었다. 자신의 감추

어진 활동적인 끼를 펼칠 무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월평균 8백여명

을 상대하는 그의 고객 관리 비결은 자필로 쓴 정성어린 편지. 그는

지난 94년 9월 당시까지는 비과세였던 보험이 10월 1일부로 과세대

상이 된다는 호기를 편지를 이용,

고객에게 알려줌으로써 마감 마지막날에 계약고 10억원이 넘는 계

약을 성사시켜 이미 삼성여왕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었다. 이후 그

는 가속이 붙어 96년에는 3백56억원의 계약고, 97년에는 5백2억이라

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삼성여왕 자리를 거뜬히 거머쥘 수 있게 되

었다.

그는 대출영업을 주로 하는데 좋은 대출건 하나 있으면 보험회사

간에 치열한 경쟁이 붙는다. 또한 담당자는 수많은 전화와 팩스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신정재씨는 자필로 정성들여 편지 쓰는 방법

을 생각해냈고, 그 방법은 사람들에게 기대 이상의 신뢰를 심어주었

다.

“제가 원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해요. 남들이 보면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보험 얘기보다는 상대방“?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

지 먼저 파악하고, 도와주지요. 그러면 보험얘기는 꺼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계약을 하거든요. 그러면 그 고객은 주변 사람도 소개

해주는 협력관계가 되는 것이죠. 저의 자산은 바로 이렇게 쌓아간

협력관계입니다.”

신정재씨는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을 십분 살려 금융상품이나 세금

에 관한 한 전문가로서 고객을 상대한다. 신문을 보면 그때그때 경

제 상황을 보험과 어떻게 연결시킬 지부터 고민하고 고객에게는

‘알짜정보’를 제공한다. 그의 가장 든든한 협력자는 남편. 그는

건강하고 일 할 능력이 있는 데 집에서 노는 것은 ‘자원낭비’라며

신씨의 직장생활을 당연하게 또 자랑스레 여긴단다. 이런 부모 밑에

서 자란 아이들이라 아이들 역시 독립심이 강하고, 부모에게 의지하

기 보다는 알아서 자기 할 일들을 해 신씨는 ‘부모의 사는 모습이

가장 훌륭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게 되고, 그래

서 한층 일에 매진할 수 밖에 없다고. 현재 그의 연봉은 3억4천

여만원. 보험업계 최고 수준이다.

“일하는 여성,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그는 끝까지 고객 곁에 남는

설계사로 정년퇴직을 맞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서울지역 영업1위 임근자 팀장

“가계를 돕고자 시작했던 보험일, 처음에는 잡상인 취급을 받아 좌

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경험 때문에 임근자(41)씨는 단련될 수 있

었다. 고객이 자신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이며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설문’만 성공

하면 반은 성공이라 여기고 상대방이 놀랄 정도로 꾸준히 방문하고

개인 정보를 관리하여 고객 수를 늘려나갔다. 초기, 별로 많지 않은

친척에게 어렵사리 보험 가입을 권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한 기

억은 그에게 ‘내가 오래 버티지 않으면 아무도 신뢰해주지 않는

다’는 깨달음을 주었고, 한번해서 안되면 두번, 세번, 될 때까지 시

도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저렇게 끈기 있고 열심인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겠지’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으로 기본적인 영업 전략

을 구축해 나갔다.

그의 활동 영역은 주로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빌딩. 종로 2가에

서 개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활이 궁핍했던 처지라 차비나 식

비조차 없었던 그는 6개월 동안 거의 점심을 거르다시피하며 종恝?

서 장위동 집까지 걸어다녔다. 종로 2가에 있는 빌딩에서부터 장

위동에 있는 빌딩까지 맨 꼭대기층에 있는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하여

지하에 입주한 사무실까지 샅샅이 뒤져 나갔다. 일단 설문을 받아

와 개인 정보를 정리하고, 다시 찾아가 설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

며 고객과 자연스레 친해지며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도 많이 돌

아다녀 한달에 구두 서너켤레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였고, 한번은

방문 중 다리가 마비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는 생각에 그는 근처 다방에서 다리도 쉬고 설문도 돌리며 A급 직

역, 고객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전세방을 꿈꾸며 딱 3년만 하자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3년 후

전세방이 아니라 제 명의의 아파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임씨는 신입사원 때부터 남편 수입과 자신의 수입을 철저하게 분

리하여 관리했는데,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던 일이라 회

사에 다니면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직장

생활을 한 이후 그는 남편이 월급을 받아오면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자신이 직장생활을 해보니 남의 밑에서 월급 받

는다는 것이 결코 굽?않음을 이해하기에 일을 하면서 부부관계는

더 친밀해졌고 때로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대화나 간단한 술

자리를 통해 풀기도 한단다. 고된 다리품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남자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보험들면 저랑 연애 할래요?’라

는 농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임근자씨는 침착하고도 단호하게 농담

을 건넨 당사자를 불러 이야기했다.

“저는 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이지 연애하러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

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소하게 던지는 말

때문에 우리 설계사들이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누

가 일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심한 장난을 쳐도 좋다고 하던가요? 당

신은 집에서도 누나한테 그런 농담을 합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우리 설계사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행동이에요.”

그 후 그 사람은 정식으로 사과, 미안하다는 뜻에서 10만원짜리 보

험에 가입했고, 임씨가 그 회사를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소중

한 고객이 되었다. 입사 초기인 84년 ‘서울 동부의 빌딩은 모두

내 것이다’는 생각막?영업을 시작했던 그는 96, 97년 2차례나

‘100만불 원탁회의상’을 수상, 작년 연도상 시상식에서는 여왕

다음 순위인 서울지역1등상으로 그간의 노력을 치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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