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트레이드는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착한 비즈니스도 냉혈적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물건을 사고, 소비하고 있으며, 그 물건들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소비를 통해 지구촌의 수많은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기준은 개개인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다르다. 보다 싼 가격을 구매의 최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도 있고,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권’이나 ‘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상품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윤리적 소비자’라 불리는 그들은 가격이나 상표보다는 그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다. 그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노동착취나 환경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구매’를 일종의 경제적 투표행위로 인식하고, 자신의 소비가 보다 정의롭고 생태적인 미래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공정무역 또는 희망무역이라 소개되어진 페어트레이드(Fair Trade) 캠페인은 윤리적 소비를 이끄는 대표적인 실천행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페어트레이드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대화와 투명성, 상호존중에 기반한 무역 동반자 관계’를 뜻한다. ‘원조가 아닌 무역을!’이라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어트레이드의 가장 큰 사명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가 공정하게 지불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있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통해서만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을 극복하고 자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페어트레이드는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착한 비즈니스도 냉혈적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세계 무역이 가야 할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페어트레이드는 또한 친환경무역이기도 하다. 친환경농법, 자연소재를 이용한 전통기술을 장려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안적 발전을 추구한다. 페어트레이드 단체들은 생산자들에게 친환경기술을 보급하고, 환경을 배려한 물건에 더 높은 구매가격을 책정하여 보다 높은 환경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페어트레이드는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간의 관계를 회복한다. 이윤 추구를 위해 돈과 상품이 주인 행세를 하고 인간의 삶 자체도 상품화되는 시장의 반생명, 비인간화로부터 페어트레이드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한다. 페어트레이드를 통해 생산자들은 기계에 종속된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신이 기획하고 창조한 예술품의 장인으로 존중받는다. 생산자들은 이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로움을 주기 위해 진심을 다하고, 소비자들은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통해 물건을 만든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 미래의 꿈을 기억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페어트레이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세계 페어트레이드 데이’에 맞춰 시민단체와 양심적인 개인이 모여 ‘페어트레이드코리아’라는 시민주식회사를 출범시켰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시민주주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양심적인 소액투자로 사업자금을 확충하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쇼핑몰뿐만 아니라 페어트레이드 전문매장을 내어, 시민들이 페어트레이드를 체험하고 물건도 직접 살 수 있는 공간을 늘려가고자 한다.
서구에서 시작된 페어트레이드는 50여년의 역사를 갖는다. 미국에서는 1946년 텐사우전드빌리지스(Ten Thousands Villages)가 판매한 푸에르토리코 자수제품을, 유럽의 경우에는 1950년대 말 구호단체로 유명한 옥스팜이 선보인 중국 난민들의 수공예품을 그 시작으로 본다. 비슷한 시기에 ‘당신은 이 설탕으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번영의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설탕 캔이 독일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1969년에는 유럽 전 지역에 2500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페어트레이드 전문매장 ‘월드숍(World Shop)’이 탄생한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 자선단체, 국제학교 등 시장 바깥에서 이루어졌던 거래방식에서 벗어나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변화가 일어난다. 남미의 정치적 민주화를 지원하던 네덜란드의 가톨릭 단체가 대기업과 손잡고 ‘막스하벨라’라는 커피 상표를 만들어 가난한 커피 소농 생산자들을 위한 새로운 거래방식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후 페어트레이드 물품은 커피, 설탕, 바나나, 초콜릿 등의 식료품뿐만 아니라 패션의류, 홈데코,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으로 늘어났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일반 상점에서도 페어트레이드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97년에는 희망무역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켜 만든 물건임을 소비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공동의 인증마크가 개발된다.
페어트레이드의 연대체인 IFAT(International Fair Trade Association)에는 현재 70여개 국가, 300여개의 조직, 100만의 생산자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체 생산품의 35%는 일반 시장에서 거래된다. 2000년 이후 거래량은 매년 20%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전체 매출액은 공식 집계된 것만 2조원을 넘는다.
경제의 세계화는 특히 가난한 나라 여성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12억 인구의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지구 경제의 성 불평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빈곤여성의 대부분은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은 임금노동력의 3분의 1, 전체 노동시간의 3분의 2를 채우고 있지만 여성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전세계 총소득의 단 10%에 불과하다.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이 생산하는 옷들은 세계 의류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싼 임금을 찾아다니는 다국적 의류공장에서 매일 12시간 넘게 일하지만 돌아가는 이익은 최종 소비자가격의 1~2%에 불과하다. 의료보험이나 보육혜택은 기대할 수도 없고 작업장에는 환기시설조차 없다.
남녀 차별 없는 임금, 탁아시설이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작업장, 의료보험·교통비·보너스가 지급되는 페어트레이드 생산공동체가 여성들의 삶을 빼앗는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부각된다.
IFAT에 따르면 페어트레이드 생산자의 70%가 여성이고, 대부분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라고 한다. 페어트레이드는 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한다. 또 대를 이어 전수된 여성들의 전통지식과 기술의 가치가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품질 향상과 디자인 개발을 위한 훈련프로그램도 제공된다.
페어트레이드에서 권장하는 선불금 제도는 원료구입비와 운송비가 없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여성들이 생산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무역 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 회계, 마케팅과 같은 전문교육도 이루어진다. 먼 거리를 걸어 위험한 작업장에서 장시간 일해야 되는 공장과 달리 이곳의 일터는 인격적 관계, 안정적 수입,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지위 향상으로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게 한다.
네팔에서 만난 페어트레이드 의류생산자들은 물레로 실을 잣고 초목으로 염색해 베틀로 옷감을 짠다. 그들은 사람을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는 기계를 거부하고, 노동을 소외시키지 않고 장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수작업을 고집한다. 가족은 더 이상 굶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페어트레이드를 통해 여성에 대한 마을의 인식도 변화하게 된다. 태국의 여성 직조공동체, ‘판마이’에서는 개개인의 소득 향상뿐만 아니라 마을기금 조성, 협동조합·탁아소 설립과 같은 공동체 활동이 이루어진다. 여성생산자들은 마을의 변화를 일구는 새로운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페어트레이드는 지난 50년간 소수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정의로운 무역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세계 인구의 17%가 지구 자원의 80%를 소비하고, 83%의 인구가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만났고 그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제 막 시작된 한국의 페어트레이드 운동은 한국의 여성들에게 지구적 불평등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소비방식을 성찰하고, 지구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며, 지구 반쪽의 가난한 여성들을 삶의 동반자로 끌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