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계·혈통 중심 가족 깨지고 다양한 가족 형태 등장 ‘신선’
어머니는 가족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대부분의 어머니 영화는 모성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모성 이데올로기는 현모, 극성 어머니, 프로 엄마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고, 2000년대 한국영화에선 수많은 모성 영화가 등장했다
영화 ‘집으로’(2002, 이정향)는 산골 마을의 할머니를 통해 추상적인 모성적 고향을 그려낸다. ‘사랑해 말순씨’(2005, 박흥식)에서는 80년대 시점으로 돌아감으로써 과거에 대한 향수와 모성애에 대한 향수를 동일시하는 퇴행적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장애아나 불치병에 걸린 자녀를 등장시켜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성을 그리는 영화들도 등장했다. ‘말아톤’(2005, 정윤철)은 자신의 삶을 온통 아들에게 쏟아붓는 ‘희생적 모성’을 통해 ‘어머니와 아들’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권적 관계로 극대화시켰다. ‘오로라 공주’(2005, 방은진)는 더 나아가 성폭행 후 죽어간 어린 딸에 대한 어머니의 복수라는 최극단의 상황을 그리면서 ‘살인도 정당화할 만큼 모성은 도덕적인 것이자 정의로운 것’이라는 모성윤리학을 설파한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모성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모성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낼 수 있다.
‘4인용 식탁’(2003, 이수연)은 모성신화에 저항하는 영화다. 양육에 대한 공포와 모성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아이를 베란다에서 던져 살해하는 어머니를 통해 모성신화를 깨뜨린다. 여성의 무의식적 공포와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깨어질 것 같지 않던 모성신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가부장적 모성담론에 저항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다.
‘인어공주’는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나영(전도연)은 엄마를, 엄마의 언어를, 엄마의 목소리를 이해하게 되고 엄마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현재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부분은 가족에 관한 담론이다. ‘혈연을 바탕으로 한 부계혈통의 직계가족’을 의미했던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함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가족의 탄생’(2006, 김태용)은 새로운 가족공동체의 출현을 알렸다. 시누이와 올케 대신 동생과 언니라는 자매애의 관계로, 또한 여러명의 엄마들과 딸이라는 사회적 모녀관계로 거듭나는 가족들을 통해 가족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가족되기’의 양상을 보여준다.
‘나의 결혼원정기’(2005, 황병국)는 현재 4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의 현실을 그린다. 처음에는 농촌 총각의 탈총각을 위해 시도됐던 국제결혼은 가족 내에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유입시켜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효사상도 자연스럽게 퇴조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영화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부모에게서 경제력만을 취사선택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 과거의 권위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노인세대간에 향후 세대간 갈등구도가 형성될 것임을 경고한다.
가족영화의 진정한 미덕은 영화 ‘가족’이나 ‘말아톤’에서 강조하는 헌신적인 ‘가족애’를 강요하거나 ‘가족의 탄생’에서 제안하는 ‘대안가족’을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 각자가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며 가족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가 진정한 가족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