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관련 법과 제도는 앞서있는 데도 현실은 못따라가
정책 입안·집행하는 공무원들의 반영의지가 절실하다

‘국가재정법’에 의해 2010 회계연도부터 정부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성인지 예산서’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예산의 수혜를 받고 예산이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성인지 결산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성인지 예산 국제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성인지 예산편성이 법적 의무로 제도화되어 있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손꼽을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여성정책 발전 속도는 가히 경이할 만한 수준인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약간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우리 사회의 여성관련 법·제도는 매우 앞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실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 여러 가지 괴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도 제도와 현실이 따로 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왜냐 하면 성인지 예산편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과연 성별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앞서기 때문이다.  성별영향평가는 ‘여성발전기본법’에 의해 2003년 3월부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규정됐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가 중심이 되어 2004년 10개 사업에 대한 시범 성별영향평가를 시작으로 2005년에는 53개 기관에서 83개 과제를 수행했고, 2006년에는 187개 기관에서 314개 과제를 수행했다고 한다. 2007년 현재는 광역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적극 참여해 총 668개 과제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이들 성별영향평가 결과가 정책에 잘 반영된다면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 확산과 더불어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추진하고 있는 성별영향평가의 결과가 제대로 환류되고 있는가다. 성별영향평가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집행하고 있는 공무원에 의해 직접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현재 의무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별영향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공무원들 간에 진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아울러 평가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평가결과를 정책수립이나 사업집행에 반영(환류)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양적 확산과 동시에 공무원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성인지력 향상교육과 성별영향평가 실무과정에 더 많은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공무원들 스스로의 성별영향평가를 위한 역량이 강화되지 않는 한 성인지 예산편성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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