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몸, 여성은 이제 남성권력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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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 기른 남자, 근육질의 남자, 마른 남자, 조금 퉁퉁한 중년의 남자들 5~6명이 사진 속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사진에 달린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이들이 남자로 성전환한 여자들임을 알게 되었다.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살다가 어느 날 남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남성 호르몬 투약과 성전환 수술을 선택한 여자들. 사진으로 보자면 이제 성별(sex)은 더 이상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 성이란 무엇인가?

남성의 몸과 다른 여성이 왜 문제일까

 

인간은 누구나 몸을 갖고 있다. 자아에 관한 인식 또한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듯 수없이 많은 몸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몸들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여자, 남자로 구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우선적으로 그 성(sex)을 확인하며, 처음 다른 사람을 대면할 때에도 성은 가장 첫번째 인지 기준으로 작용한다. 어린이 성장과정에서 성적 정체성의 확인은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를 이룬다.

여자, 남자의 구분이 절대적인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몸이 지니는 해부학적 차이와 기능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학자들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학적 성(gender)을 구분하여 전자는 자연적인 것으로, 후자는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보부아르의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은 바로 젠더로서의 여성을 말한 것이었다.

근래 들어 생물학적 성조차도 문화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없이 많은 몸들을 여자와 남자라는 생물학적 범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의 구분을 의미있게 만드는 맥락을 주목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만일 여성, 남성의 구분이 의미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애초에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성의 몸과 다른 여성의 몸이 왜 문제인가? 그것은 여성의 몸을 문제로 설정한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즉 남성의 몸과 다른 여성 몸의 기능(특히 수태의 능력)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역사 안에서 남성은 가문이나 대를 잇는다는 명분, 혹은 재산이나 직위를 물려준다는 명분으로 여성의 몸을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남성의 몸은 영혼과 이성이 깃든 것인 반면, 여성의 몸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남성은 정신, 여성은 몸’이란 이분법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지어 남성의 씨앗(정자) 속에 완전한 인간이 작은 형태로 있고, 여성은 단지 그것을 자라게 하는 물질적 원리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수태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기여를 동등하게 인정한 후성설이 자리잡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정신과 몸의 이분법에 기초한 서양문화 안에서 남성은 정신, 여성은 몸으로 동일시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조차 보인다. 몸으로서의 여성은 비이성적, 비합리적이며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서 욕망의 화신이 되며, 이성으로서의 남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유교문화는 정신과 몸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마음 공부는 몸 공부와 불가분의 연결을 가지며, 몸 공부는 도덕적 교화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성의 몸 공부가 효제충서(孝悌忠恕)와 같은 가치에 기반을 두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여성의 몸 공부는 정절에 기반을 두고 집안을 잘 간수하는 일(봉제사와 양육)을 목표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성에 대한 통제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남성의 성은 기생의 존재나 축첩제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인욕(人慾)을 없앤다’는 성리학의 문화 안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몸의 이분법이 없는 문화 안에서도 여성의 몸은 문제가 된다. ‘色을 멀리 하라’는 격률은 몸으로서의 여성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또한 가부장, 가문 중심의 이념은 대를 이어줄 어머니, 여성의 몸을 핵심으로 두어야 하는 딜레마를 초래시킨다.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식은 출산하는 여자의 몸과 성욕의 대상으로서의 여자 몸을 사회적으로 나누어놓는 것이었다.  

푸코 “권력이 작용하는 첫 장소가 몸”

 

동양과 서양 문화 안에서 보듯 여성 몸에 대한 통제가 정신과 몸의 이분법에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분법과 상관없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 안에서 여성 지배의 모든 것은 여성 몸에 대한 통제와 관련을 갖는다. 푸코와 같은 현대 철학자는 권력이 작동하는 첫번째 장소가 인간의 몸이라고 보아, 몸과 권력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권력의 육체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각종 훈육의 체계들, 감옥, 수용소, 정신병동, 군대나 학교와 같은 체계들을 분석함으로써 권력의 기제를 보고자 한 것이었다.

여성주의자들은 푸코를 발전시켜 여성 몸을 대상으로 한 남성 권력의 기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우리 전통사회 안에서 여성들의 교화를 목적으로 쓰였던 내훈서들의 내용도 주로 웃음, 말소리, 행동거지, 살림방법 등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유교적 권력이 어떻게 성별 차이를 만들어내고, 조신하고 절도 있는 조선 여성의 몸을 탄생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성적 담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분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푸코는 말한다. 오늘날처럼 성적 억압이 심했던 시대도 없었다고. 오늘날 권력은 욕망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어서 우리는 억압을 억압으로 느끼지도 못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숱한 성적 언어의 상징체계에 갇힌 채 무엇에 의해 놀아나는지도 모르는 욕망의 게임을 쉼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이 실질적 권력을 갖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사회 안에서 여성의 몸은 그 권력의 효과가 각인된 장소다.

성애화된 몸으로서의 여성의 몸을 재현하는 광고전략, 보이기 위한 몸을 만들려는 패션과 건강산업의 전략, 좀더 젊고 아름답고 날씬한 몸을 보여주기 위한 미디어의 전략, 여성 몸을 전적으로 성적 존재로 환원시키는 포르노그라피의 전략뿐만 아니라, 여성 몸을 대상으로 한 문화의 전략은 오늘날 넘쳐난다. 여성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남성 몸의 성애화 전략도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점점 더 심해지는 ‘성애화 된 몸’

 

여성의 몸, 혹은 남성의 몸을 성적 담론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이 가능한가? 성담론과 분리된 여성 몸의 경험은 무엇일까? 여성의 삶에서 이제 임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이 감소되었다. 수태의 목적이 사라진 인간의 몸이 갖는 기능에서 성적 차원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치장의 도구로서의 몸이 될까? 권력의 전략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내가 나의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육체적 주체성과 자율성은 얼마나 순수한 형태로 확보될 수 있는 것인가?

구한말 찍은 어떤 사진에서 몇몇의 여자들은 젖가슴을 저고리 아래로 드러낸 채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다. 당시에는 이것이 아들을 낳은 표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전철 안에서 젖을 먹인 여자에 대한 비난으로 떠들썩하기도 했다. 여성의 젖가슴이 오로지 성적 의미만을 지닌 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주체성이나 자율성 또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규정된다. 문화적 맥락에 의해 물들지 않은 순수한 육체적 자율성과 주체성의 의미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가 어떤 특정한 하나의 성으로 규정된 몸을 차별적으로 대상화하고, 그것이 그 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문화적 저항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자율성은 이렇게 긍정적 형식이 아니라 저항이라는 부정적 형식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그 저항이 모르는 사이에 남성 권력의 전략에 휘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들은 모든 지성의 눈을 부릅뜨고 살아가야만 한다.

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며, 몸 또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여성의 몸, 나아가 인간의 몸이 놓인 복합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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