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남성권력에 대항하는 딸의 외침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방황하고, 반역자로 몰려 죽은 뒤 들판에 버려진 오빠의 시체를 수습한 이유로 숙부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되어 현대에 다시 태어났다.

평론가 겸 극작가 장성희씨가 새롭게 쓴 '안티-안티고네'가 오는 28일까지 서울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엘리스 인 베드', '가족 왈츠' 등 페미니즘 연극을 주로 선보여온 극단 '움툼'이 내놓은 신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이디푸스와 숙부 크레온이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가 이에 대항하며 여성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테베에서 추방된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왕이었을 때의 고귀한 모습을 잃은 채 딸에게 기생하며 희생을 강요한다. 순종적인 딸로 자라난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달리고 싶어요. 맘껏 달리고 싶어요. 날고 싶어요"라고 무대 위 안티고네는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나서지 마라! 아들이 먼저야. 조상님께 고할 땐 딸은 뒷전이야. 딸이 왜 딸이냐. 삼종지도! 뭐든 다 따르라고 딸이야. 꼬옥 네 오라비를 앞세워라"라며 윽박지른다.

여사제인 동생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의 가부장적 위선을 거부하며 안티고네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죽음을 앞둔 오이디푸스가 두 딸에게 함께 무덤에 묻힐 것을 요구할 때도 '예스'라고 답하는 언니와 달리 이스메네는 거부한다.

반역자로 처형당한 왕자들의 시체를 벌판에 버려두라는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돌로 치려 하자 이스메네는 신탁을 빌어 저주를 내린다. 분노한 크레온은 군인들로 하여금 이스메네를 능욕하게 한다. 남자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두 자매는 세상을 떠돌고, 안티고네는 자신이 아닌 딸로서 살아온 인생에 몸서리치며 '안티 안티고네'를 외친다.

로맨틱 코미디와 브로드웨이 흥행작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고전극을 실험하는 극단의 시도가 돋보인다. 장성희 작가는 '안티고네'에 대한 기존 해석들을 부정하며 가부장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여성관객들에게 진정한 여성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도 여성의 입장에서 그리스 비극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문의 (02)745-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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