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장관 대상] 목동고등학교 3학년  황진아

내가 사랑하는 귓구멍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청소기로 내 방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전화가 울렸다. 달려가서 수화기를 들고 친절하게 여보세요~ 하고 받았는데 상대방의 누구입니다~라는 대답 대신 내 귀에 들리는 건 댕… 하는 소리뿐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상대방의 얄팍한 인내심에 가벼운 욕을 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때 방에서 할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몰라요. 전화가 끊겼어요. 또 다시, 누구라고오~? 아니이, 전화가 끊겨서 모른다구요. 이제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누, 구, 라, 고??"… 맙소사.

이건 다 할머니 귓구멍에 있는 귓밥 때문이다. 할머니 귓속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귓밥이 살고 있는 걸까.

내가 할머니의 귀를 판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그러니까 나는 약 11년 동안 할머니의 귀를 파온 것이다. 대체 난 얼마나 많은 귓밥을 퍼내야 하나.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처진 귓불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긴 귀지개를 연필 잡듯 부드럽게 잡는다. 그리고는 귀지개를 귓구멍에 넣고 다닥다닥 긁어서 퍼내면 된다. 아. 여기, 포인트가 있다. 검지손가락을 귓구멍에 넣고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빼주어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귓밥마저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 귓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구멍 안에서 나가고 싶어 간질간질 아등바등하는 귓밥.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귓속에서 살았다. 엄마 아빠가 아침 일찍 직장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왔기 때문이다. 언니, 나, 동생은 아주 자연스럽게 할머니 품안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화장실의 변기보다도 방안에 있는 요강의 편리함을 먼저 깨우쳤고, <로봇 태권V>나 <피구왕 통키>와 같은 시시한 만화보다는 <여섯시 내 고향>, <가족오락관>, <TV는 사랑을 싣고>를 더 재밌게 즐겨 보았다. 그리고 일반 동네 슈퍼에서 파는 바나나우유보다 목욕탕에서 파는 목욕탕표 바나나우유가 제 맛이란 걸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리라.

어렸을 때 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시장에 많이 따라다녔다. 시장에 있는 청바지집에서 할머니가 옷을 골라줄 때면 가게 아줌마가 "진아는 좋겠다~, 이렇게 멋쟁이 할머니가 계셔서"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나의 작은 어깨는 으쓱거렸다.

우리 구재근 할머니가 멋쟁이인 이유가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할머니는 내가 배가 살짝 고프거나 입이 심심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던져주었다. 나는 그 동전을 손에 쥐고 부리나케 달렸다. 그리고는 설탕범벅이 된 달콤한 떡꼬치를 하나 사먹거나 고추장을 칠한 매운 꼬치 하나를 사먹었다. 행복했다. 확실히 우리 할머니는 멋쟁이였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서 나는 자랐고 할머니는 늙었다. 내가 너무 커버려서 할머니가 늙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귓구멍엔 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들, 삼촌들, 언니, 동생, 그리고 '나'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01년, 어느 추운 1월의 겨울날 할아버지가 귓구멍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는 곧 뒤따라갈게. 잘 가슈~ 하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쓸쓸해 보였다. 눈에 띄게. 할머니의 처진 귓불이. 처진 젖가슴이 더 처져 보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담배 피우는 걸 나에게 들켜 슬프게 웃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빠와 큰 소리로 다툰 뒤 방안에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의 모습이, 온종일 꿈쩍도 않고 등을 대고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모습들이 낯설었다. 멋쟁이 우리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딴 할머니들 같았다.

시간이 더 흘러가더니 세월이란 놈이 할머니를 조금씩 쪼금씩 치료해주었다. 예전과 같이 할머니는 멋쟁이다. 그래도 가끔씩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늘어진 어깨에서 슬픔이 보여 나도 따라 슬퍼진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다. 나도 그녀를 보고 그냥 웃는다. 아직도 그녀는 내가 팬티를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휙휙 던져놓는 철부지 꼬맹이로 보이나 보다. 이럴 때면 할머니 귓속에서 편하게 마냥 놀고 싶어하던 어렸을 적 내가 된 것 같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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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상] 과천여자고등학교 3학년  김지은

네 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대라

이모가 펼쳐놓은 네모난 사진첩 가득히 새로운 세계가 빚어져 있었다. 이국적인 느낌의 풍경은 금방이라도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내가 사진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어디냐고 물으면 이모는 득의양양하게 설명해주곤 했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공원을 지닌 영국, 프랑스 파리의 익살맞은 거리 악단, 코끼리 등에 올라 앉은 태국에서의 사진까지.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방랑자. 불꽃 같은 에너지와 열정, 주위 사람들까지 데이게 할 것 같은 그 뜨거움을 연료삼아 온 세계를 날아다니는 사람. 카메라 하나만 목에 걸고 신발 뒤축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걷고 또 걷는 사람. 그래서 잘 익은 알밤처럼 그을린 이모의 얼굴은 늘 생기로 가득했다.

우리 집과 이모가 사는 집은 가까웠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엄마 말대로 '겨드랑이에 날갯죽지가 돋아난 마냥' 쉴새 없이 떠도는 방랑의 피를 타고는 이모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일년 중 6개월도 채 안되었다. 그 이상이면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 집에 있을 때도 여행 경비를 벌어두기 위해 아르바이트며 번역이며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다, 돈이 좀 모였다 싶으면 다시 부리나케 떠나버렸다. 언제나처럼 낡고 기스투성이인 카메라와 필름으로 가득한 주머니를 들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사진첩들 위에 새로운 사진첩을 올려놓았다. 이모의 사진첩은 한편의 그림동화였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이고 그 지역의 문화까지 절묘하게 사진에 담아낼 줄 아는 이모 때문에, 나는 이모가 돌아왔다 싶으면 냉큼 이모집에 놀러가 새로 생긴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감탄하며 사진을 구경하는 나를 보면 이모는 뿌듯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이모, 카메라 좀 바꿔. 기능 좋은 걸로 찍으면 더 잘 나올걸."

"말도 안되는 소리. 이건 내 보물이야."

그 오래된 카메라는 이모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산 것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이 안되어 방황할 때, 이모는 기분전환 겸 정동진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해돋이를 보고 마음이나 다지자는 기분으로 간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쌀쌀한 새벽에 바닷물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을 때, 이모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불현듯 그 장면을 너무나 간직하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간 이모는 카메라를 샀다. 그 후, 이모는 여행중독자가 되었고 카메라는 영원히 이모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내가 언제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건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는 증거야.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는 건 내 인생이 그만큼 행복하다는 얘기거든. 너도 네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으면 카메라를 들이대 봐.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진이 나올거야."

철학박사 나셨네, 하고 빈정거렸지만 사실 나는 이모가 부러웠다. 보석처럼 빛나는 상처들을 가진 그 오래된 카메라까지도.

하지만 이모의 여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모가 살고자 하는 삶을 이해 못하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끊임없이 이모의 방랑을 반대했다. 이모의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기자 외삼촌들마저 가세하여 이모의 여권을 뺏겠다고 난리였다.

외할머니 생신날 온 친척들이 외갓집에 모였을때, 외할아버지는 기어코 고함을 지르셨다.

"다 큰 기집년이 정신이 있냐, 없냐? 나이가 찼으믄 시집도 가고 애도 키워야 할 판인디 뭐하고 싸땡기는 거여?"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동안, 이모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허둥지둥 일어나 쫓아갔다. 시골의 너른 논밭과 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이모를 부르다가 뒷산으로 이어지는 풀밭에서 그녀를 찾아냈다. 이모는 풀밭 가득 피어난 클로버를 헤집어 대고 있었다. 난 턱까지 차오른 숨을 헉헉거리며 주저앉았다.

"지은아, 너도 네잎 클로버 찾아볼래?"

뜻밖에도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묻는 이모를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모는 아랑곳없이 클로버를 살피는 일에 열중했다. 어이가 없어 넋을 놓고 있던 나도 눈으로 클로버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네잎 클로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모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이제 그만 가자, 이모."

늘어뜨린 머리카락 때문에 이모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이모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렀다.

"너 그거 알아? 네잎 클로버는 사실은 기형이야. 다른 것들은 모두 세잎이잖아. 말하자면 병신인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행운의 상징라고 말해. 마찬가지야. 남들과 좀 다르다고 해도 오히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행복의 기준일 수도 있어."

난 이모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클로버들을 그러쥔 이모의 손등 위로 투명한 눈물이 떨어졌다.

"난 내 삶이 만족스러워. 내가 하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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