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란 공통분모로 스스럼 없이 공유 ‘뭉클’

2007년 2월26일, 유엔에서 제51차 여성지위위원회의 회의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회의장 안은 색색의 옷을 입은 각국 대표단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으면서 잔잔하게 웅성대는 소리로 잔칫집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여아(girl child)에 대한 차별과 폭력 철폐로 베이징 행동강령 이후 그 이행과 관련된 각국의 조치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해보자는 것이었다.

개회식 다음날 나는 패널 토의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발언을 할 기회를 얻었다. 수석대표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여아에 대한 차별과 폭력 철폐를 위해서는 관련 법체계의 제정, 또는 개정뿐 아니라 법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한 정책과 지침, 제재방안의 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여아에 대한 성폭력사범을 단절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 중 사회적 인식 확대와 제고를 위하여 매년 하루 ‘성폭력 추방의 날’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음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각국 패널리스트들은 여아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인종차별, 가난, 사회적 소외 등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각국의 공동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상호간의 정보교환 및 축적임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번 회의는 우리 대표단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개회식에서 반기문 총장이 유엔 고위직에 여성을 임명한 것에 대한 주요 고위급 인사들의 감사의 말은 유엔 회의장이 마치 우리나라가 손님들을 초대해 접대하는 자리인 양 착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유엔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가 “어제 총장님이 식사를 하시러 이곳에 오셨다”며 늘어놓는 자랑도 왜 이리 듣기 좋은지….

며칠 동안의 회의는 각국의 낯선 사람들이 반갑고 익숙한 사람들로 다가오는 경험을 갖도록 해주었다. 복도를 지나다가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하는 아프리카 대표. 그녀의 얼굴 색깔, 언어, 경험이 나와 달라도 그저 눈웃음만으로도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었다. 단지 며칠 동안이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고민을 공유하였고, 무엇보다 같은 여성이었기에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언어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도 대답했다. ‘여성’이라는 언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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