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삶속 갈등·위기 대처능력 탁월
우뚝 솟은 ‘여사제’ 면모
남성 중심 역사관 묻혀 ‘흠’

‘소서노는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세상, 유례없이 나라를 두세개나 세운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대왕이다.’(단재 신채호)

소서노를 세계 속의 위대한 여왕으로 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역사는 양성문화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일수록 폐쇄적이고 스스로 자멸하는 경향이 강하며, 아버지의 질서와 어머니의 질서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양성적 사회에서 개인은 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여지를 갖게 된다.

이번 <주몽> 드라마에서도 연타발은 딸의 교육에 상당히 양성적인 시각을 지닌 현대적 아버지상으로 보인다. 또한 소서노와 주몽의 관계도 양성적으로 ‘큰 여자와 깬 남자’로 상호보완하는 측면이 많이 그려져 있다. 역사적인 자료나 드라마의 소서노가 두세 나라를 세우고 지켜가는 일에서 갈등과 위기 해소의 능력과 전화위복의 혜안은 오늘날에도 배울 바가 많다.

소서노의 지혜로운 5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석가모니가 왕자로서 굳이 택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상황을 박차고 자신의 깨달음에 충실하여 대스승이 되듯, 소서노도 아버지 연타발의 그늘 아래 일개 ‘공주’로서의 평탄한 삶만을 원하지 않고 스스로 민족통일과 건국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자신의 삶으로 선택했다. 둘째, 주변의 그럴싸한 권력자들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보다 8살이나 아래인 데다 여러 가지가 부족한 주몽을 동반자로 선택하여 민족정신을 잇게 했다. 셋째, 소서노와 만나기 전 주몽이 어릴 적 결혼한 부인과 그로부터 생긴 아들의 출현에서 발생한 분열과 위기를 더 큰 땅, 더 큰 나라의 건국으로써 극복하고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고구려’가 이어지게 했다. 넷째, 대륙을 거쳐 금수강산을 택해 백제가 있게 하고 이로써 일본의 왕가가 있게 했다. 그리고 다섯째, 자신의 죽음을 국가의 위기와 분열의 조짐을 막기 위한 죽음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문자학자들에 의하면 아버지 이름이 연타발임에 비해 소서노의 ‘소’(召)자는 ‘칼을 입에 문다’, 아니면 ‘말이 칼같이 영험하다’는 뜻으로 해석돼 ‘여사제’로 푼다. 칼을 입에 문 여성, 말이 칼같이 영험한 지혜로운 여성이 고대 부족국가에서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

역사학자들도 여사제의 존재에 대해 삼국시대 이전은 물론이고, 유화부인의 지모신적 요소, 박혁거세의 딸 아로 공주가 국무였고, 화랑의 우두머리 원화들이, 또 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옥 여왕 사이의 공주 비미호(희미꼬)가 무녀, 신녀였듯이 소서노 역시 여사제였음을 추정한다. 조상 대대로 자신들의 정든 땅과 재산을 주몽과 유리의 고구려에 물려주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또 다른 뜻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서노의 ‘소’(召)자 뜻 외에도 ‘서’(西)자는 인간의 이상세계를 염원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노’(弩)자는 짧은 활(또는 ‘노’(奴)자는 큰 영역, 즉 나라)을 뜻한다고 한다. 또는 우뚝 솟은 여자, ‘소선녀’라는 뜻으로도 푼다. 드라마에서는 여미울 신단, 마우령 신단이 따로 등장하였지만 ‘소서노’ 자체가 우뚝 솟은 여사제로서 국무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유학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기에서 ‘소서노’ 이름자를 뺀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한국이나 제3세계 민족문화가 1970년대 초반까지도 문화적 평가나 정책적으로나, 또한 국가나 지식인의 시각 내에서 소멸의 사각지대에 있었듯 오늘날 신녀들의 인권, 그들의 종교와 문화와 삶이 죽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일이므로 70년대 우리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물결을 일으켜 세우듯 범여성계와 종교계와 지식인,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21세기의 인류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남성적이거나 조직적이거나 배타적인 물결이 아니다. 타의반 자의반으로 상생의 뜻을 입으로, 몸으로 전하라는 사명을 받아 선택된 여성들과 남성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요소가 우리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같이 지켜질 수 있고, 새로운 22세기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것을 같이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존 드라마에서는 존재치 않던 소서노 여제와 민족종교의 정체성을 큰 비중으로 여기며 조심스레 다룬 점에서 이번 <주몽>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