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운동 혜택 입은 세대지만 페미니스트 거부
일하는 엄마 · 친밀한 아빠 영향···세상변화 주역으로
최근 미국에선 ‘소년들의 위기’(boy crisis)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부,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들의 활약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2004~2005학년도 전체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의 비율은 59%.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여학생의 수도 1970년 10%에서 현재 40%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2004년 보스턴의 고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연설자의 80%가 여학생이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하버드대 교수는 이들을 “이전 세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계층의 출현”으로 규정하며 ‘알파걸’(alpha girl)이라 명명했다.
최근 출간된 ‘알파걸’은 킨들런 교수의 이 새로운 여성형에 대한 심층보고서이다. 저자는 미국과 캐나다의 15개 학교 여학생 113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900여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 다양한 ‘알파걸’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들 ‘알파걸’은 엄마 세대의 치열한 페미니즘 운동의 혜택을 입은 세대이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는 여권주의자가 아닌 평등주의자다. 페미니즘은 여성 평등이 아니라 남성 적대적이다”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앞서 소개했던 수전은 “엄마와 이모는 내가 ‘페미니스트’ 성향이 없다는 사실에 속상해 하셨어요. 평생을 바쳐 싸운 것들을 제게 물려주지 못한다고 느끼셨나봐요. 하지만 난 페미니스트가 아닌 걸요”라고 말한다.
‘알파걸’들은 자신들이 남학생들보다 똑똑하니 능력만으로도 기회를 얻을 수 있기에 굳이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유리 천장을 맞닥뜨리더라도 충분히 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킨들런 교수는 이런 ‘알파걸’의 남녀평등 사상을 페미니즘의 ‘제3의 물결’이라 얘기한다.
▲ 여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강한 여성 롤모델의 수가 늘어난 것도 ‘알파걸’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왼쪽부터 정계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스포츠계의 골프선수 미셸 위, 대중문화계의 오프라 윈프리. |
반면에 남성들은 사회에서 쇠퇴현상을 보이고 있다. 몇년 안에 미국에선 대졸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고위직에 올라가거나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도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저자는 “여자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할모델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또한 “현대 남성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여성적 특성을 지닌 차세대 남성들은 남자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배려심을 가진 남자로서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알파걸’이 보편적인 여학생들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부유한 가정에서 똑똑한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일부 계층의 여학생일 수도 있다. 그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엔 여전히 넘어야 할 높은 벽들이 존재할 것이고 일과 육아 사이의 고민도 여전할 것이다. 그러나 킨들런 교수는 “알파걸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알파걸은 가장 긍정적인 자유와 독립 정신을 대표하며 전세계에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니, 앞으로 지켜볼 만하지 않은가.
댄 킨들런 지음/ 최정숙 옮김/ 미래의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