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업인을 만나다 (12) 돼지가 홍삼에 빠지던 날 ‘대박’
“합천군을 포크밸리로”부푼꿈

경남 합천은 산간 및 내륙지역으로 축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양돈의 경우 김해에 이어 사육 두수가 두 번째로 많다.

“뽀얀 얼굴 때문에 제가 손해를 많이 봐요. 시어머니도 내려오시면 남편 혼자 고생하고 저는 별로 고생을 안 한 줄 아세요.”

강영란(46) 월계축산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백옥 같은 곱디고운 피부를 보고 놀랐다. “오랫동안 돼지를 키우시면서 고생하신 것 맞느냐”고 묻자 “그럼요. 처녀 때는 더 곱고 하얀 얼굴이었는데, 고생해서 이렇게 돼버린 걸요”라고 대답한다.

경남 합천에 위치한 월계축산의 두 주인 강영란·김한규(48) 대표는 부부가 함께 돼지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부인 강씨는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대학 졸업 후 간호사 생활을 했다. 도심에서 나고 자라서, 도심에서 직장생활을 한 엘리트 여성이었던 것이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 두 부부는 친구 오빠의 소개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도시 처녀, 돼지 키우겠다고 결심 

- 축산의 핵심 업무 ‘기록’ 맡으면서 ‘양돈’ 배워

“소개팅을 하고, 바로 다음 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내에게 ‘시골 가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김씨의 말에 부인 강씨가 웃는다. 이런 부부를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이들 부부가 87년 경남 합천에 내려올 당시 재산이라곤 부인 강씨의 퇴직금 1000만 원이 전부였다. 중고 트럭을 200만 원에 구입하고, 축사 뼈대를 세우고… 당연히 빚을 지기 시작했다. 벽돌과 시멘트를 사고 돼지 키울 축사를 손수 지었다. 안되겠다 싶어 영농후계자 사업을 하려고 신청했지만, 그때까진 지역에서도 귀농한 ‘이방인’으로 인식되던 터라 쉽지 않았다.

“돼지고기 홍삼 만난 ‘심바우포크’ 개발”

- 고급 브랜드 돈육으로 백화점 진출 성공

200마리를 수용하던 축사가 지금은 1800마리 규모로 9배나 확장되었다. 김씨는 이 같은 성과에 대해 “기회가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히 말한다.

15년 전인 94년 축사를 확장할 즈음, 정부가 선도학사계층에게 전국 시험을 쳐서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생겼다. 남편 김씨가 축산부문에서 당당히 합격한 결과 정부 돈 1억 원을 장기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돼지는 소에 비해 새끼를 낳고 키우는 기간이 짧다. 암퇘지는 생후 8개월에서 10년까지 새끼를 가질 수 있고, 젖을 떼면 한 달 만에 발정이 나서 1년에 두 번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처음 돼지 9마리를 키우며 얻은 소득이 89만 원. 20여 년 전 그때 적어뒀던 ‘가계부’와 ‘양돈기록’을 강씨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처음 돼지를 키울 때의 어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 품었던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처음 4년은 수입보다 투자하는 게 더 많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월계축산도 자리를 잡아갔다. 일이 곤할 땐 학창시절 은사였던 서울대 황우석 전 교수가 “힘들면 서울로 올라오라”며 전화로 격려해주곤 했다. 돼지를 키우기 위해 부부가 함께 노동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부부는 입을 모은다. 부부가 대표로 있는 ‘월계축산’ 의 지난해 매출은 8억 원에 달한다.

월계축산은 흙살림연구소, 국립경상대학교 축산가공연구팀과 공동으로 홍삼박, 쌀겨, 깻묵, 활성탄 등의 주원료에 천연 미생물을 첨가해 발효시킨 생균제를 사료첨가제로 사용한 ‘심바우포크’를 개발했다. ‘돼지고기와 홍삼의 만남’을 브랜드화한 것이다.

심바우포크 브랜드 돈육은 지난 2000년 8개 농가로 시작해 2003년 7월에 상표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30농가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A·B등급이 많아 합천군으로부터 마리당 1000원의 지원도 받고 있다. 매년 4월 합천 벚꽃 마라톤대회 행사에서 심바우포크 무료 시식회를 개최하고, 축산물 브랜드 경진대회 및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일반 소비자들에게 홍보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홈쇼핑 등에도 납품하고 있다.

합천에 돼지 인공수정센터 짓는 게 꿈

 - ‘돼지생산이력제’ 도입… 일본 ‘브랜드 정책’ 배워야

‘월계축산’은 제1회 양돈장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제) 인증을 받았다. HACCP는 식품의 원재료 생산·제조·가공·보존·유통 단계별 오염 요인을 없애도록 하는 위생관리 체계로 이 체계를 도입한 업체는 매년 식약청의 위생 관련 점검을 받는다.

이는 소비자들의 안전 축산물에 대한 욕구가 증대하고 있고, 돈육시장 개방화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강씨 부부는 ‘돼지생산이력제’ 도입을 주장한다. 돼지생산이력제(일명 돼지고기 실명제)란 소비자가 돼지고기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돼지고기에 부착된 바코드를 읽을 경우 해당 돼지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컴퓨터 화면에 출력되도록 하는 시스템. 컴퓨터 자료에는 돼지고기가 태어난 장소와 일시, 생산자 사진, 혈통은 물론 사육 시 먹인 사료, 생체 단층촬영 사진, DNA 유전자 구조 등이 포함돼 있다.

강씨는 “축산 분야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며, 국제환경 속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축산 분야는 시행착오를 겪는 분야라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향후 양돈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신규 인력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기계화와 자동화밖에 없다.

강영란, 김한규 부부는 합천에 ‘돼지 인공수정센터’를 짓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합천군이 ‘포크 밸리’가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한다.

● 프로필

강영란 대표   88년 월계축산 공동대표

                   2003년 ‘심바우포크’ 브랜드 등록

                   1회 양돈장 HACCP 인증

● 후배 여성농업인에게

“꼼꼼한 농업경영 여성에 딱”

거친 농촌 일이 많은데, 그런 일을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거친 농촌 일도 있지만, 꼼꼼하고 섬세한 농촌 일도 많다. 특히 돼지를 키우는 일엔 어머니 경험을 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는다. 가계부를 쓰듯이 경영 실적을 쓰고, 육아일기를 쓰듯이 돼지 키우는 기록을 하면 된다.

이제 농업도 기술과 지식 집적 산업이 되었기 때문에 섬세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돼지를 키울 때 정성과 애정은 필수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그 옆에서 잠도 못 자고 밤을 새워요. 새끼를 보면 너무 예뻐요. 그 새끼가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간호하는 것은 제 자식한테 하는 것처럼 해요.”

● 강영란 대표의  성공 5계명

1. 한 우물을 파라

귀농이 결정되면 품목이나 축종이 정해진 후엔 자신의 직종에 자부심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져라. 10년 이상 꾸준히 교육이나 세미나 등에 적극 참여하여, 신지식을 내 농장에 맞게 적용하고 단계마다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2. 정확한 기록이 재산이다

기록을 토대로 나온 성적을 분석하고 개선책이 무엇인지,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여 문제점을 잡아나가다 보면 농장 성적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 또한 생산자단체 등에 가입하여 다른 농가와의 교류를 통하여 우리보다 더 잘하고 있는, 성적이 더 좋은 농가의 것을 벤치마킹 한다.

3. 신용이 생명이다

금융거래나 업무상의 거래에서 신용은 생명이다. 믿을 수 있는 신망 받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 업종에서 성공할 수 없다.

4.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라.

일을 하다보면 많은 시련과 위기가 찾아온다. IMF 관리체제 때 사료 값은 폭등하고 돼지 값이 폭락하여 모두들 돼지를 정리할 때, 월계축산은 그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이는 정확한 정보와 신용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투자하여 도약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의 동향, 국제의 흐름 등을 정보화를 통해 면밀히 주시한다.

5. 삶을 윤택하게 일을 즐겁게 하자

농촌에서 여성의 삶이란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일을 친구삼아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