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없으면 지원대상 제외…제도자체 실효성 의문
10명중 8명 남편학대 경험…가정폭력에도 무방비

최근 결혼 이민자(이주) 여성에 대한 법·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속속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자녀가 있는 여성만 지원 대상으로 하는 등 그간 문제로 지적됐던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돼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8월 21일 ‘다문화가족지원법’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초안 형태로 제시된 법안에는 ▲언어·문화적 차이로 인한 부부·고부 간 갈등과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사업을 실시하고 ▲일상적·지속적 지원을 위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지정하는 것은 물론 ▲다문화가족 지원기관을 국가·지자체는 물론 사립학교·방송사업자 등 공공기관으로까지 확대하고 ▲이혼한 경우에도 국적을 취득한 자에 한해 지원을 계속하도록 하는 등 과거보다 진일보한 조항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이주 여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도 빠져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1~2년 사이에 이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혼 여성 대부분이 아이가 없다”며 “지원 대상에 이혼한 이주 여성을 포함한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유자녀 여성으로 적용 범위를 제한한 것은 문제”라며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005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 여성의 31%가 욕설과 폭언을 경험했으며, 구타와 부부강간 등 성적학대를 당한 경우도 각각 26.5%, 23.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 필리핀 여성이 남편에게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최근에는 중국 여성이 아파트 8층에서 남편에게 떠밀려 하반신이 마비되는 등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혼이 다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주 여성들이 이혼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것을 두려워해 남편의 폭력을 그대로 견디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무자녀 이주 여성에게도 ‘합법’ 신분을 보장해줌으로써 제도적 지원이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법무부가 언어 등의 문제로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을 입증하기 어려운 이주 여성들을 위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여성단체가 상담 내용 등을 근거로 피해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만간 여성가족부와 해당 여성단체의 자격을 정하기 위한 조율 작업을 거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문화가족지원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장향숙 의원실 김명신 비서관은 “애초 이번 가을 정기국회 때 발의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간담회에서 제기된 내용들을 토대로 법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치면 연말로 미뤄지게 될 것 같다”며 “법안 골격이 갖춰지면 연말쯤 공개 공청회를 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