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산꼭대기 아파트에서는 아랫동네 아파트와 주택들 위로 다른 건물들에 의해 그림자가 하루종일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서쪽 2시 방향 아래로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운동장은 앞 아파트로 해서 오전 시간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린아이들이 해를 맞고 커야 되는데 해가 부족한 위치에다 학교를 지었다.

동서방향을 내다보는 거실과 부엌 창문에 서 있는 내 시야로 가끔씩 갑자기 신축 아파트의 구조물이 한 층씩 올라오면 저 높이가 어디까지 올라오나 걱정을 시작하게 된다. 높은데 살고 있어서 교통이 불편한 점이 있어도 앞이 탁 트인 내 집의 장점이 위협을 받는 것도 솔직히 말해 문제가 되지만 새 건축물로 인해 인근의 집들은 지금까지의 주거여건에서 많이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전망이 사라진 집

멀리로는 삼각지 부근의 30, 40층 건물이 하늘을 보는 내 시야의 일부를 가리기 시작했고 그 너머로는 국방부 근처의 초록색의 숲이 덜 보이게 됐다.

부엌 창으로는 마포대교 근처의 한강 일부를 아래 아파트 동간 사이로 조금 즐길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사이로 무엇이 조금씩 솟아오르더니 그 정체가 신축 강변 고급 아파트였고 마침내 강의 3분의 2를 가렸다. 멀리서 안타까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도시의 시멘트 구조물과 생활환경의 변화가 적나라하게 들어온다. 조망권과 일조권이 어느 날 갑자기 침해를 받는 것이다. 큰 건물 뒤로 옹기종기 펼쳐져 있는 단독 및 연립주택들이 고층건물의 길고 큰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만다. 내가 읽은 한 영어 수필은 신축 건물로 인해 햇빛을 도둑맞은 친구 얘기에서 그 그림자를 ‘immense shadow’라고 했는데 내 기분대로 번역하자면 ‘무지막지한 그림자’가 딱이다.

우리는 도시를 푸르게 만들자는 소원을 갖고 있다. 숲을 많이 만들고 공원을 많이 만들고 남산에서부터 과천까지 생태 축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햇빛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공원이나 숲보다는 햇빛이 더 급할 것이다. 지금 이미 시작됐지만 앞으로는 초고층 아파트로의 재건축이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수많은 집들이 일조권에 고민을 갖게 될 것이다. 도시계획 관련 당국이 미리 정책적으로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할 것이고 비록 분쟁이 없다 해도 햇빛이 가려진 도시는 에너지 저소비형의 지속 가능형 도시가 될 수 없다.

패시브 하우스 될 수 없나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수동적인 집) 개념의 집들을 보았다. 추우면 내가 불을 때고(히터를 틀고) 더우면 냉방을 하는 등 적극적인(active) 어떤 조치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해를 그저 수동적으로 잘 이용하고 받아들여서 난방과 냉방을 즐기는 에너지 고효율의 생활환경을 만드는 신재생 에너지 개념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일조권이 중요하며 특히 남향으로 집을 앉히고 벽과 지붕의 두께를 높여서 단열을 하는 것이 전제였다. 신도시 건설, 재건축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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