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여유만만’ 콘서트장. 올해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야’를 비롯한 실력파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는 흠뻑 빠져든 청중과 함께 하는 한바탕 잔치판 그 자체였다.
잠실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요란스러운 함성과 호응 덕분에 필자 역시 이 생경하고도 신나는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댄스곡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와중에 가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득 혼자만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던 것이다. 앞자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내빈석의 중·장년층은 체면 때문인지 처음에는 엉거주춤했다.
그러나 어색한 순간도 잠시,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갔다. 열기가 고조되면서 사회자는 관객이 모두 일어나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유도했고 어색해하던 관객들도 별 저항 없이 일어나 박자를 맞추었다.
마지막 노래는 정말 아쉬웠다. 앙코르에 앙코르를 거듭하고 싶었지만 밤새도록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쉬움 속에 돌아오며 차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10대부터 60대까지, 무엇이 세대도 취향도 다른 수많은 청중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일까? 감성에 무딘 ‘점자니스트’ 아저씨들까지도 어쩌면 거의 들어본 적도 없을 하드록 계열의 생경한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로 요약하면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열에 들뜬 함성이 만드는 자연스런 분위기.
그러나 그 뿐이었을까? 엉거주춤 엉덩이를 반쯤 걸친 점잖은 분들을 결정적으로 일으켜 세운 사회자의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즐길 줄 아시는군요.” 마야의 맞장구도 결정적이었다. “지난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콘서트였어요. 올해도 역시 그럴 것 같아요.” 관객의 호응에 화답하는 이 한마디로 그전까지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리의 대통령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달포 전 국가 경쟁력에 관한 책을 한 권 냈다. 이 책을 내기 위해 성공과 실패에 관한 선진 각국 지도자의 사례를 뒤지고, 각 나라를 전공한 공동 집필자들을 섭외하고, 원고를 독촉하고, 세미나를 열고… 이렇게 미쳐서 보낸 기간 때문인지 요즈음도 모든 생각이 그 쪽으로만 내닫는다.
지도자가 할 일은 ‘동기 부여’다. 목표를 제시하고 뛰게 만드는 일이다.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몰입하여 함성을 지르고 싶어서 찾아온 관객은 연주만 시작되어도 열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부는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을 동참케 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량이요 정성이다. 이들이 계속 팔짱을 끼고 분위기를 맞추지 않으면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도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혼신을 다해 열창한 뒤 환호 속에 무대에서 사라져 가는 마야를 보며, 그 뒷모습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국민은 뛰고 싶다. 다시 해내고 싶다.
믿음직한 지도자가 다음 세대의 안정된 삶을 위해 기업과 노조 등 각 사회구성 주체들이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뛰어보자고 혼신을 다해 설득하는데도 냉소로 답하는 국민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퇴임하는 대통령의 뒷모습에서 아름다움과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나는 마야의 CD를 하나 샀다. 나는 이제 그녀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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