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회

가끔 노년전문가 대접을 받을 때가 있다. 과분하다 못해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4년 전 여성신문에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그것을 모아 책을 펴냈던 데 대한 응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예순도 채 안 된 새파란 것이 이 세상 나이를 혼자 먹기라도 하듯이 엄살을 부리며 온갖 넋두리를 떨어댔으니 참으로 민망스런 짓을 잘도 해냈구나 싶어 슬그머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인간이란 어느 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참으로 엉뚱한 동물이다.
그럼에도 뜻밖에 운때가 잘 맞아서 책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아마도 고령사회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살짝 건드렸던 덕분인가 보다. 아무튼 그 덕에 나이듦 또는 노인문제에 대하여 글을 써달라거나 말을 해달라는 청탁에 엄청 시달리고 있다. 때로는 전문적인 세미나에 초청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내게도 아직은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어서 세미나까지는 차마 가지 못했다. 아마추어가 어찌 감히 프로 행세를. 아무리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지킬 선은 있다.
하지만 내 책을 읽어보고 크게 공감을 했다는 독자들이 부르는 자리는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세상에 돈 받고 파는 책을 내놓은 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젊은 여성들이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결코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 바쁜 세상에 짬을 내 모인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들은 이미 나이듦에 대하여 준비가 된 청중이다.
반면 나는 이제까지 아무 준비 없이 살아왔다. 아무 준비 없이 살아 왔다는 내용으로 책을 한 권 펴냈을 뿐인데 그 유명세를 팔아서 감히 ‘멋지게, 또는 즐겁게, 또는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럴 때 난 좀 약삭빠른 편이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도사가 된다. 그래, 실패도 교훈이고 무엇보다 나는 저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잖아. 이렇게 자기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는데도 여전히 모자르다는 걸 보여 주면 큰 위안을 느낄 거야, 용기도 얻을 테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바보처럼 사는 줄 알잖아, 자기만 외로운 줄 알고.
또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무언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느 새 얼치기 노년 전문가의 역할에 적응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존재라서 그들이 짧은 시간 쏟아 놓는 내 이야기에서 무엇을 건져 가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의 나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돌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두들 자신이 한참 늙었는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아직 너무 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아이를 다 키우고도 살 날이 너무 길다는 것, 자칫하면 백 살까지 살수도 있을 텐데 이제까지 대비가 허술했으니 앞으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불안과 설렘을 함께 발견한다.
아무튼 시간이 약이라고 이젠 나름대로 내공이 쌓여 나와 같은 또래나 젊은 사람들을 앞에 놓고는 잘도 떠들어댄다. 문제는 나보다 훨씬 나이든 분들에게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경우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한 오래된 교회의 노년반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자신 없으면 사양하면 되지 않냐고?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오죽 좋겠수? 살다 보면 도저히 사양 못할 얽힘이라는 게 있답니다. 게다가 무슨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의 쑥스러움만 참으면 되는 일(부탁하는 쪽에서는 봉사라는 듣기 좋은 말을 썼다)인데.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젊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노년전문가 유경씨의 책 ‘마흔에서 아흔까지’를 찾아 꼼꼼히 읽었다. 책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알찬 내용이 그득 담겨 있었다. 과연 프로였다.
그걸 발판으로 70, 80대 선배들 앞에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웃어라, 비워라, 베풀어라…실은 그 분들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 분들은 다가와 치사를 하셨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죠.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인자한 표정과 겸손한 태도에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게다가 한 분은 여든이 넘은 여성인데 매일 아침 수영을 즐긴다고 했다. 멋지게 나이드는 법을 이미 오래 전에 체득하신 분들이 거기 계셨다.
아,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도처에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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