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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와이 가오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어버리면 끝인 책과 책장을 덮어도 그 안의 내용에 대해 자꾸만 곱씹게 되는 책이 있다.

의외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 담겨진 책이 그런 경우가 많다. 가와이 가오리가 지은 '섹스 자원봉사'는 그런 책 중 하나다.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감도 없지 않지만 우리의 사고 체계에서 이 제목을 판단하지 말자. 미국 성교육학자 칼데론이 주장한 것처럼 '다리 사이에 있는 성(sex)이 아니라 양 쪽 귀 사이(대뇌)에 있는 성(sexuality)'이라는 보다 넓은 범위의 의미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친밀감과 애정을 포함한 성을 뜻하고 있음을 책장을 덮는 순간 알게 된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주간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 가와이는 어느날 한 편의 비디오를 보게 된다. 취재원이던 장애인 남성이 보여준 그 비디오에는 69세나 된 신체장애 1급의 남자가 자신의 성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과 자위행위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불편한 그에게 손자뻘은 됨직한 청년이 다가가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장면은 가와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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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의 사랑을 그린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 장애인의 성 문제 중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그는 이 비디오를 본 뒤 본격적으로 장애인의 성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고 2년여에 걸친 취재결과물은 '주간아사히'와 '후진코론' 연재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생생한 현장취재로 장애인의 억눌린 성문제 조명.

가와이는 장애인의 성을 취재하도록 이끈 비디오의 주인공 다케다를 찾아간다. 역겹도록 충격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생명유지장치인 산소통을 떼면서까지 목숨을 건 섹스를 한다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성은 사람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남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섹스 봉사를 하는 사유리를 만나 성을 통한 자원봉사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유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이중차별 신랄하게 비판

저자는 여성과 장애로 이중차별을 받아야 했던 여성 장애인의 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

그가 만난 여성 장애인들은 “의사나 사회복지사 중에는 여성 장애인이 생리하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여긴다” “장애인은 성적 쾌락을 알면 안 되고 성에 대한 인식조차 가져서는 안되냐”며 강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사 사토는 “남성 장애인에 비해 여성 장애인의 성에 대한 실정이 더 형편없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려 섹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성교육, 연애 워크숍 사례에 네덜란드 현지취재까지

정신지체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에 눈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체장애인에 비해 훨씬 더 금기시되는 것이 정신지체장애인의 성이다. 기본적인 성교육과 함께 연애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워크숍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03년부터 정신지체장애인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NPO)를 주축으로 오사카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신지체장애인들과 관계자를 위한 성 워크숍'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장애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네덜란드 현지 취재기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금기시되고 무시돼 왔던 장애인의 성에 대해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장애인의 성욕을 해결해줄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무성적 존재'로 여겨졌던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장애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압도적인 설득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설득의 대상은 바로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이다.

가와이 가오리 지음/육민혜 옮김/아롬/8500원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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