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두 자녀 양육비 1억여원 미지급
굴삭기 기사로 일하며 “일 못해 돈 없다”고 거짓말
양육비 미지급자 첫 실형…“이후 재판에 영향 줄 것”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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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엄마에게 “너 거지냐? 양육비 알아서 벌어”라며 10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은 ‘나쁜 아빠’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알려진 양육비 사례 중 미지급자에게 실형이 나온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인혜 인천지법 형사8단독 판사는 27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44)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성 판사는 "피고인은 이혼 후에도 당연히 미성년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었다"며 "굴착기 기사로 일하면서 급여를 모두 현금으로 받았는데도 1억원에 달하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비난 가능성 크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는 이행 명령 청구와 강제집행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며 "피고인은 미성년 자녀들과 전 배우자에게 장기간 회복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덧붙였다.

2023년 12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삭발시위를 진행한 김지은씨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에 위로를 받고 있다. ⓒ박상혁 기자
2023년 12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삭발시위를 진행한 김지은씨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에 위로를 받고 있다. ⓒ박상혁 기자

두 자녀를 키우는 김씨는 2013년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에서 집을 나간 친부 박씨와 이혼했다. 김씨가 이혼 과정에서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하자 박씨는 "너 거지냐? 양육비는 네가 알아서 벌어"라며 핀잔을 줬다.

김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박씨에 양육비 이행명령, 재산명시, 감치명령 등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제재조치를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받지 못하자 2022년 12월 박씨를 양육비이행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까지 김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1억여원에 달한다.

재판에서 박씨는 "아이들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가진 재산이 없고 일도 구하지 못해 양육비를 줄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는 거짓이었다. 김씨는 박씨가 굴삭기 기사로 일하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박씨가 일한 출근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2023년 12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박상혁 기자

김씨는 2023년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며 양육비이행법 제도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삭발시위를 진행했다. 또한 김씨를 응원하는 시민 2만여명이 법원에 엄벌탄원서를 제출했다.

박씨에 실형 선고 후 재판장을 나온 김씨는 여성신문에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 중 하루”라며 “그동안 양육비 재판에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만 나와 많이 긴장했는데, 3개월이나마 실형을 받아내 양육자들에 희망적인 판례를 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박씨에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 다른 양육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연대활동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이번 재판은 판사가 양형조사 및 피고인에 대한 보호관찰조치까지 이뤄지는 등 이례적인 조치가 있었다”며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정보다 아이들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의 판결이 나온 만큼 앞으로의 양육비 형사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1년 7월 양육비이행법 개정에 따라 법원의 양육비 이행명령을 따르지 않은 미지급자는 신상공개·출국금지·운전면허정지 등 제재조치와 감치명령을 받을 수 있다. 감치명령 이후에도 양육비를 계속 주지 않으면 최대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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