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6일 오전 장애인이동권을 위한 탈시설장애인당의 지하철 침묵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혜화역으로 갔다. 시위 시작 시간인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한 여성 경찰관이 늦었는지 승강장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회색 점퍼를 입은, 서울메트로 관계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승강장에서 개찰구로 올라가다 그 여성 경찰관과 엇갈려 지나가며 여성 경찰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 다 크게 웃었다.

부적절한 상황들이 다 그렇듯이 이 상황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인권단체가 시위를 하고 지하철 역무원과 지하철 보안관과 관할 경찰서가 공무집행을 하러 온 현장이었다. 한쪽에선 남성 경찰들이 방패를 줄지어 세우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이 정체불명의 중년 남성은 공공장소에 근무하러 온 경찰관의 머리를 남들 보라는 듯 쓰다듬는 것이다.

나는 경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경찰도 아마 나를 별로 안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여성 입장에서 여성 경찰들의 안전한 노동과 직업인으로서의 지위와 존엄이 보장되고 있는지 그날 종일 생각했다. 그 중년 남성이 그 경찰관과 실제로 친한 사이라면 친한 사람의 머리를 만지며 노닥거리는 사적인 친교는 공적인 근무 장소 말고 다른 데서 해야 한다. 그 정도 판단력도 없으면 사회생활 할 자격이 없다. 반대로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다른 짓도 저질렀을 것이고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정보라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이동권을 위한 탈시설장애인당의 지하철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이동권을 위한 탈시설장애인당의 지하철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방패까지 든 비장애인 성인 남성 경찰부대, 그 경찰부대에 둘러싸여 종이 한 장 들고 침묵하는 장애인, 여성, 노인들. 그리고 난데없는 비장애인 중년 남성이 여성 경찰관의 머리를 쓰다듬고 웃으면서 가버리는 광경은 매우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형태의 권력이 누구에게 집중돼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데모를 더 해야겠다.

그날 우리는 또 지하철역에서 쫓겨났다. 혜화역 바깥 이룸센터 앞에서 선전전을 마친 뒤에 나는 삼각지역으로 달려가서 세월호 10주기 기억공간 존치 피켓 시위에 참가했다. 세월호 부모님들이 많이 오셨고 특히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들도 참여하셔서 나 혼자 속으로만 반가워했다. 2월 말부터 시작된 세월호 10주기 전국행진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전혀 안 맞아서 결국은 마지막 날만 참여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됐다.  ⓒ정보라 작가 제공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됐다. ⓒ정보라 작가 제공

우리는 3월16일 아침 9시 광명시청 앞에 모여서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까지 하루 종일 행진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옛날 광화문 농성장의 세월호 서명대 동지들과도 즐겁게 인사했다. ‘벌써 10년’이라는 놀라움보다는 그 10년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고 그에 비해 진실 규명도 추모할 권리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더 컸다. 이미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돌며 행진한 세월호 부모님들은 광명시청을 출발하기 전 고단한 팔다리에 스프레이 파스를 흠뻑 뿌렸다. 또다시 세월호 부모님들이 고생하시는 광경을 보게 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날씨는 화창했다. 햇살이 적당히 따뜻해서 걷다 보면 기분 좋을 정도로 땀이 났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광명에서 영등포로,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행진했다. 여의도공원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행진을 재개했는데, 아침보다 인원이 네다섯 배로 늘어 있었다. ‘도봉 노란리본’ 등 서울 각지의 세월호 관련 자발적 시민모임과 전장연, 여성민우회 등 인권단체들이 대거 합류했다. 나는 여성민우회 참가자들과 노란 리본 열쇠고리·스티커 등을 나누어 부착하고 기운차게 출발했다. 여의도 공원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가로질러 노란 행진대오가 걸어가는 장면은 아주 멋있었다.

여의도에서 마포-공덕-애오개-서대문-시청으로 향했는데 지점마다 인원이 계속 합류해서 노란 행진이 점점 길어졌다. 행진 후반부에 내가 사랑하는 전장연과 노들야학 깃발을 따라 걸었다. 전장연 여성 활동가님이 『저주토끼』 얘기를 하며 인사하셔서 반갑게 서로 연락처도 교환했다. 전장연이 상당히 폭압적으로 탄압받는 서울 상황, 반면 비수도권에서는 이동권이 대체 무엇이고 저상버스가 어디에 왜 필요한지 기본적인 것부터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같이 한탄했다. 애오개역 앞에서 잠시 휴식했을 때는 친한 SF작가인 G작가님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서 조그만 손깃발까지 준비해서 단체로 행진하러 온 것이다. G작가님의 가족도 총출동했다. 본래 G작가님은 팽목항 걷기도 계속 참여했고, 전국행진 초기 일정도 참여했고, 이제 서울 행진에 참가하러 왔다고 했다. 굉장히 고맙고 반가웠다.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는 건 뿌듯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됐다. ⓒ정보라 작가 제공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됐다. ⓒ정보라 작가 제공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 도착하니 사방에 뭔지 모를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확성기를 단 승합차가 군가를 큰 소리로 방송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승합차는 세월호 10주기 기억의 달 선포식 내내 옆을 맴돌면서 집회를 방해했다. 10년째 계속되는 일이니까 별로 놀라울 건 없는데 참 저 사람들도 끈질기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어쨌든 집회는 진행됐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도 행진에 참여했고 문화제에서 운영위원장님이 발언도 하셨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분들께는 언제나 죄송하다. 참사가 또 일어났다는 사실이 가장 죄송하고, 다른 사안들에 비해 내가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또 죄송하다.

그리고 대형 화면에 2월25일 제주에서 3월15일 안산까지 세월호 10주기 행진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미에서 세월호 부모님들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마당에 모여 옥상에 까마득히 보이는 소현숙 동지, 박정혜 동지와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자 나도 모르게 울어 버렸다. 세월호 어머님들과 고공농성하는 두 여성 동지들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마음 아프고 가장 애틋한 분들인 것 같다. 나도 구미에서 같이 행진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행진이 끝나고 포항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세월호 부모님들과 옵티칼 공장 옥상 위의 두 동지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혼자 질질 울었다.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된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에 등장한 손팻말들과 정보라 작가가 착용한 조끼.​ ⓒ정보라 작가 제공
지난 16일 서울에서 마무리된 세월호10주기 전국시민행진에 등장한 손팻말들과 정보라 작가가 착용한 조끼.​ ⓒ정보라 작가 제공

오는 4월13일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 기억문화제가 열린다. 16일 안산과 인천, 서울에서 희생자 기억식이 거행된다. 세월호 10주기 전시회도 있고, 지난 10년을 기록한 책 『10년의 사람들』이 발간되고, 단원고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 아버님의 ‘416TV’ 활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도 4월 초에 개봉한다.

내 생각에 이런 기록과 행사들은 일반 시민이 세월호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처벌을 받았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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