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화가 작품 79점
여성 화가들도 비중있게 소개
8월25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 시간(Breakfast Time), 1887, Oil on canvas, 87 × 91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 시간(Breakfast Time), 1887, Oil on canvas, 87 × 91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맑은 날 아침, 정원 나뭇잎 사이로 드리운 빛을 화폭에 담았다. 스웨덴 화가 한나 파울리(Hanna Pauli, 1864~1940)가 그린 ‘아침식사 시간’(1877)이다. 정원에 차려진 식탁 위 주전자와 접시, 꽃병에 반짝이며 아른거리는 빛의 묘사가 우아하다.

“19세기 스웨덴의 아침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느낌이죠.” 요하네스 안드레아손 주한스웨덴대사관 대사대리 말대로다. 물병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오는 여성이 반갑게 맞아 주는 듯하다. 섬세한 표현과 맑은 색채에서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이 엿보인다.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를 혼합한 듯 전형적이지 않은 구도도 눈에 띈다.

안나 보베리,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Mountains. Study from North Norway), 1900, Oil on canvas, 85 × 180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안나 보베리,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Mountains. Study from North Norway), 1900, Oil on canvas, 85 × 180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북유럽에서 태어나 세상의 북쪽 끝에 푹 빠진 여성 화가도 있다. 안나 보베리(Anna Boberg, 1864~1935). 스스로를 ‘극지 탐험가’, ‘북극 화가’로 불렀다. 절경으로 소문난 노르웨이 북부해안 로포텐 제도를 1901년 처음 찾았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30년 넘게 로포텐 풍경을 꾸준히 그림으로 남겼다.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1900)은 100호가량 크기의 대작이다. 바다 위로 솟은 빙하의 장엄하고 서늘한 절경을 그렸다. 사진으론 잘 담기지 않는 유화 물감의 반짝이는 질감이 돋보인다. 어스름 검푸른 빛으로 물든 바다와 대비돼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금 서울 강남구 마이아트뮤지엄의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화가들의 그림 79점을 선보인다.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에 영감을 준 ‘국민 화가’ 칼 라르손, 덴마크에서 상징주의와 사회현실주의를 개척한 라우리츠 아네르센 링 등 각국 대표 화가들의 그림을 모았다. 남성 중심 미술사에서 가려지고 평가절하됐던 여성 화가들의 작품도 별도의 섹션으로 비중 있게 소개한다.

칼 라르손, 전원(Idyll), 1880, Oil on canvas, 70 × 48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칼 라르손, 전원(Idyll), 1880, Oil on canvas, 70 × 48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아침식사 중에(At Breakfast), 1898, Oil on canvas, 52 × 40.5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아침식사 중에(At Breakfast), 1898, Oil on canvas, 52 × 40.5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꽃이 핀 목초지 위의 고양이(Cat on a flowery meadow), 1887, Oil on canvas, 61 × 76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브루노 릴리에포르스, 꽃이 핀 목초지 위의 고양이(Cat on a flowery meadow), 1887, Oil on canvas, 61 × 76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리카르드 베르그, 바르베리의 요새(The Fortress of Varberg), 1890년대, Oil on canvas, 73 × 92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리카르드 베르그, 바르베리의 요새(The Fortress of Varberg), 1890년대, Oil on canvas, 73 × 92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칼 노르드스트룀, 폭풍 구름(Storm Clouds), 1893, Oil on canvas, 72 × 80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칼 노르드스트룀, 폭풍 구름(Storm Clouds), 1893, Oil on canvas, 72 × 80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전시는 20세기 전환기에 북유럽 예술가들이 벌인 새로운 회화 실험과 ‘북유럽 화풍’이 정립된 배경을 조명한다. 당대 젊은 북유럽 예술가들은 역사화와 풍속화만을 고집하던 보수적인 고국 예술계에 회의를 느꼈다. 예술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로 떠났고, 자연주의·인상주의 등 당대 유럽을 휩쓸던 예술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귀국해 최신 화풍과 북유럽의 정경을 접목한 새로운 작품들을 남겼다. 민족 낭만주의(National Romanticism)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명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동이 튼 예술적 혁신이 예술적 성숙의 황혼기와 민족 낭만주의로 무르익을 때까지”라는 뜻이다.

스웨덴 대표 여성 화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여성이 화가가 될 자격’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프랑스·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으나, 스웨덴에서도 여성들의 설 자리는 좁았다. 미술협회에 가입해야만 전시를 열 수 있었는데 여성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1910년 여성 예술가 40여 명이 새로운 판을 짰다. ‘스웨덴 여성 예술가 협회’를 결성했고 이후 스웨덴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율리아 벡, 가을날(Autumn Day), 1883, Oil on canvas, 77 × 107.5 cm (auktionsfirmans mått).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율리아 벡, 가을날(Autumn Day), 1883, Oil on canvas, 77 × 107.5 cm (auktionsfirmans mått).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안나 보베리, 3월 저녁, 노르웨이에서의 습작(A March Evening. Study from North Norway), 1910, Oil on canvas, 83.5 × 112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안나 보베리, 3월 저녁, 노르웨이에서의 습작(A March Evening. Study from North Norway), 1910, Oil on canvas, 83.5 × 112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엘사 백런드-셀싱, 커피 타임(Coffee Time), 1916, Oil on canvas, 142 × 155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엘사 백런드-셀싱, 커피 타임(Coffee Time), 1916, Oil on canvas, 142 × 155 cm ⓒ스웨덴국립미술관/마이아트뮤지엄 제공

그에 앞서 ‘신 이둔’(Nya Idun)이 있었다. 남성 중심 ‘이둔 소사이어티’(Sällskapet Idun)에 대응해 1885년 결성된 스웨덴 여성 문화 협회다. 스톡홀름에 살며 과학, 문학, 미술, 교육, 사회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작은 모임으로 출발해 회원 500여 명 규모의 단체로 발전했다. 안나 보베리, 율리아 벡, 힐데가르드 토렐, 에스테르 알름크비스트 등이 활동했다.

스웨덴 여성 화가들의 ‘성평등 결혼 생활’ 이야기도 흥미롭다. 부유한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한 안나 보베리는 파리 유학 중 만난 스웨덴 건축가 페르디난드 보베리와 결혼했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안나가 어머니를 설득해 결혼을 강행했다고 한다. 결혼한 이후에도 보베리 부부는 유럽 곳곳을 돌며 새로운 문물을 탐구했다. 안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많았다. 아이는 낳지 않았다.

한나 파울리는 스웨덴 화가 게오르그 파울리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에도 다른 예술가들과 어울려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했다. 이 여성 화가들이 남성 예술가의 아내나 뮤즈에 머무르지 않고 미술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성평등인 셈이다.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맞아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함께 마련한 전시다. 명화와 함께 체험하는 미술 심리 치유 프로그램,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키즈 아틀리에 등 다양한 전시 연계 교육·문화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8월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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