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것, 더불어 사는 것,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삶 속에서

실천하는 버릇이자 습관이죠.

이를 연습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기적인

자기만의 덫에 걸려 살게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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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로 다리를 잃은 캄보디아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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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라자로마을에서 환자와 함께 흥겨워 하는 박청수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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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곧 자아실현으로 여기는 박청수 교무. “자력은 타력에 정비례 한다”는 삶의 원칙으로 세계 53개국에 60억여원 규모의 구제활동을 펴는 기적을 이루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농부 파홈은 고작 자신의 관을 놓을 땅 한 평을 얻기 위해 쉬지 않고 달음박질하다 숨을 거둔다. 파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럴 것이다. 반면 40여년간 전세계 53개국 소외 이웃들에게 60억여원의 돈과 30여개의 컨테이너를 꽉 채운 옷가지 등을 전해주고도 만족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도 있다.

삼성가 홍라희 여사도 24년간 성라자로마을 동행

'한국의 마더 테레사'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원불교 박청수(68) 강남교당 교무. 내년 정년을 앞둔 그지만, 북한이탈 청소년들의 남한 정착을 지원해줄 특성화학교 '한겨레학교'의 터를 일구고 시설을 갖추는 한편 인도 델리에 개척 중인 교당을 굳건히 하고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어려운 지구촌 이웃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등 머릿속엔 올 한 해 바삐 돌아갈 일들만 가득 차있다. 특히 내년 3월 개교 예정인 한겨레학교의 경우, 2002년 성지송학중학교, 2003년 헌산중학교 설립에 이은 것이어서 박 교무 스스로 “3년간 연년생으로 대안학교를 낳고 있는 셈”이라고 말할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다.

그 와중에도 그에게 아주 특별한 행사가 2월 12일 열린다. 바로 나환자촌 성라자로마을 사람들의 공동생일이자 박 교무가 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되는 기념행사다. 그동안 남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일을 기념해 매년 성라자로마을을 방문하며 24년을 박 교무와 동행지기를 해온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등 그의 발걸음에 동행한 지인도 적지 않았다.

감성적 봉사의 체험리더십 종교계 협력운동 이끌어

“30여년을 한결같이 쫓아다닌 끝에 지금 바로 내 곁에 성라자로마을이 와 있는 것만 같다”고 새삼 긴 인연의 감격에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는 박 교무. 그의 발자취가 더욱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 협력운동을 그처럼 열정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한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 교무의 손길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불문하고 공평하게 미쳐왔다. 실제 구제 액수도 타종교에만 2억여원에 가깝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너무나 소박하고 생활 체험적이어서 감동이 더하는 감성적 봉사의 리더십이다. 그 밑바탕엔 여성적 감성이 풍부한 무소유의 성직자로서 우먼파워가 막강한 종교의 조직에서 활동한다는 조건이 전제돼 있다. “성라자로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서양인 수녀님의 굵은 손마디가 벌겋게 언 모습”에 감동 받아 마을을 위해 무엇인가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기금 마련을 위해 우이동 수도원 시절과 강남교당 초창기 때 담양 창평엿을 팔면서 엿이 부드러운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꾸만 엿을 깨물어 송곳니가 반쪽으로 쪼개졌지만 오히려 “송곳니 바쳐 나환자 돕는다”고 스스로 만족했던 그다.

급박한 곳에 기어이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불같은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박 교무는 “내가 원래 눈이 밝고 귀가 밝아요”라며 “어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알면 24시간 이내에 돕는다는 것이 내 원칙이죠. (그런 상황을) 잘 못 견디니까요”라고 시원스럽게 설명해버린다.

“나누는 것, 더불어 사는 것,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삶 속에서 실천하는 버릇이자 습관이죠. 이를 연습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기적인 자기만의 덫에 걸려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물질을 모으고 사는지 모르고 살게 마련이죠”

이런 면에서 박 교무는 자신의 강남교당 교도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300여명의 소수지만 그야말로 남을 돕는 데 있어선 '정예요원'이기 때문. 그의 세계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함께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그의 열정을 조금이라도 소진시키는 일은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에 대해 박 교무는 “마음으로, 기운으로 물결 같이 제 활동에 힘을 합해주죠”라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세계 53개국에 도움손길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려

88년 캄보디아 지뢰제거 작업 지원을 비롯해 북한, 히말라야 설산 라닥,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스리랑카,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어려움을 대할 때마다 박 교무는 “좀 더 잘사는 사람들로부터 물질을 부지런히 날라 좀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전달자로 자신을 정의하고 즉각 행동을 개시하곤 한다.

“일이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혼자 생각하곤 하죠. 이런 내가 있으니 설산 라닥 사람들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거야, 캄보디아 바탐방 무료 구제병원에서 3만여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의사 앞에서 가슴을 열어 보이고 진료를 받을 수 있어 큰 위로를 받았을 거야 등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아시아권에만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10억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하루도 잊지 않고 상기하곤 하는 박 교무. 이런 이들을 생각하고 보살피느라 “내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요”라고 토로도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을 설득해 그들을 도와주도록 해야지”라는 결심의 열정이 폭풍처럼 또 해일처럼 일어나 앉으나 서나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을 매순간 그도 어쩌지 못한다.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람엔 우주 기운이 저절로 따라와

“봉사할수록 그 역량이 자라난다는 것이 소신입니다. 우선 '염원'이 있어야겠죠. 마음에 없는 일은 절대 할 수 없기에 이는 곧 '종자'인 셈이죠. 다음으론, 좋은 일이 충실히 또 엄청난 결과가 되도록 원력(願力)이 커져야 하죠. 소원이 사무치면 안 되는 일이 없기에 그 소원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빼먹지 말아야 하고, 밥 먹고 자는 것도 다 그 일을 위해 해야하죠. 마지막으론, 사심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해요. 철저히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자석에 못 달라붙듯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도와주러 오는 거죠”

“숨는 것은 드러나게 마련, 드러날 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더해 자랑스럽고, 빛나고, 위대한 일을 은밀히 하겠다”는 그의 인생관은 현실에서 “자력은 곧 타력에 정비례한다”는 굳은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 내가 남 보기에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무엇인가를 주장해도 파워를 발휘하니 늘 성찰 수행해 자력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제까지 자신 삶의 궤적에 대해 “다 내거지, 주었다고 생각 안 하기에” '봉사'란 용어 자체를 싫어한다는 박 교무는 “난 남을 위해 살 수 없어요, 날 위해 살아온 거지. 내 생명의 완전연소에서 의미를 찾아 헤매왔어요”라고 단언한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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