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병원 '시험관 아기 유전자 불일치' 논란 아내 A씨
“그래도 우리 아들...진실이 알고 싶을 뿐”
“난임부부들이 우리 같은 피해 입지 않길”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와 그의 가족  ⓒA씨 제공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와 그의 가족 ⓒA씨 제공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해 약을 먹어도 잠들기 어렵고, 꿈에 교수가 계속 나타나 괴로워하다 잠을 깨길 반복해요. 병원 옥상에 올라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해요. 작년엔 제가 정말 죽을까봐 딸이 학업을 중단하고 반년간 제 옆을 지켰어요. 너무나도 황당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요." 

2년 전부터 50대 여성 A씨는 모든 일상생활이 중단됐다. 자신이 낳은 아들의 유전자가 남편의 것과 다르다는 유전자검사결과를 받아든 2022년 7월부터였다. 1996년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이듬해 낳은 아들이었다.

이 사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하고 박상규 셜록 대표가 MBC·YTN 라디오 등에서 소개하면서 거의 전 언론사가 보도할 정도로 사회 이슈가 됐다. 여성신문은 15일 이들 가족이 사는 경기도 오산의 자택에서 A씨를 만났다.

A씨는 불면과 악몽, 자살충동은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이십여 년 간 함께 살아온 자녀가 친자식이 아니었다는 사실보다 더 A씨를 괴롭히는 건 평생을 신뢰해온 병원 측의 책임회피였다.

병원 측은 “시술 기간 동안 자연임신을 했을 가능성이 있고,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지나 병원이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하고 있다. 시술을 진행한 교수는 잠적 후 어떤 연락도 받지 않고 있다.

A씨 부부는 병원 측의 '자연임신' 가능성이라는 표현에 억장이 무너졌다. 마치 외도를 암시하는 듯한 표현이었다.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그들의 태도에 한 가정의 일상 역시 송두리째 무너졌다.

남편인 B씨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생업까지 포기했다. 지난해 12월 25일엔 딸에게 유서를 남긴 채 죽음을 시도했다. 딸의 빠른 신고로 겨우 생명을 건졌으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금도 그는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와 아들 ⓒA씨 제공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와 아들 ⓒA씨 제공

아이를 가졌을 때만 해도 이런 비극이 찾아올 줄은 전혀 몰랐다. 결혼 후 수년째 아이를 갖지 못하던 이들 부부는 2002년 간염 항체 검사 도중 부부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 아들에게서 나온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란 부부는 당시 시험관 시술을 진행한 교수를 찾아가 경위를 물었지만 교수는 영문 자료와 함께 “시험관 시술을 하면 종종 돌연변이가 나온다. 친자식 맞으니 걱정 말라”고 설명했다. 부부는 의심을 접었다.

아들이 독립을 준비할 나이가 된 2021년, 부부는 가족 간 다른 혈액형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병원과 교수에 과거 보여줬던 영문 자료를 요청했다. 교수는 해당 연락을 받지 않은 채 잠적했고, 병원은 “기록이 없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냈다.

결국 유전자검사로 아들과 아버지의 유전자가 같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현재 병원 측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A씨는 진실이 알고 싶다고 말했다.

“제3자의 정자가 쓰였다고 우리 아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어요. 난임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외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사건부터 병원 측의 책임을 정확히 물어야 합니다.”

A씨 부부의 아들인 C씨는 전화 통화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유전자가 바뀌었더라도 나를 키워준 부모님이 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의사와 병원 모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에게 책임소재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번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 ⓒ박상혁 기자
대학병원 시험관아기 유전자 불일치 사건 당사자 A씨 ⓒ박상혁 기자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 시험관시술을 진행한 C교수는 어떻게 알게 됐나.

“하혈로 고생하던 중 시누이의 추천을 받아 C교수를 찾아가게 됐다. 치료 중 ‘몇 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하자 인공수정을 권유받았다. 한 차례 실패 후 시험관시술을 통해 1997년 첫째 아들을 얻었다. 이후 2000년 같은 교수, 같은 시술로 딸까지 얻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준 신’이라고만 생각했다.”

-남편과 아들 간 유전자가 다르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나.

“2022년 유전자검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2002년 아들의 간염 항체 검사 과정에서 혈액형 검사를 병행하자 A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부부 모두 B형이어서 유전적으로 A형이 나올 수 없지만, C교수가 영문 자료와 함께 ‘시험관시술을 통해 얻은 아이들은 종종 돌연변이가 나온다. 친자식이 맞으니 걱정 말라’고 설명해 의심 없이 아이를 키웠다. 이후 성인이 돼 독립하려는 아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자 병원에 과거 A교수가 보여줬던 영문 자료를 요청했다. A교수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병원은 ‘애석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유전자검사를 진행했고, 남편과 아들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 외관상으로 아들이 친자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들지는 않았나.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를 많이 닮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빠를 많이 닮은 아이도 있잖은가. 우리 아들은 손, 골격, 눈매 등 많은 부분에서 나와 똑같다. 그래서 혈액형이 달라도 정말 돌연변이인줄로만 알고 친자식이라고 생각했다”

-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된 후 어떤 심정이었나.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약을 먹어도 잠들기 어렵고, 꿈에서 C교수가 계속 나타나 괴로워하다 잠을 깨길 반복하고 있다. 너무 화가 나서 병원 옥상에 올라가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기력증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자 딸이 휴학계를 내고 몇 달 동안 나를 돌보기도 했다. 남편의 경우 마음고생이 심해 지난해 12월 25일 딸에게 ‘아빠 없이도 잘 지내’란 내용의 메시지를 남기고 죽음을 시도했다. 남편을 구조한 구급대원이 ‘30초만 병원에 늦게 이송됐어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계속해서 치료를 받는 중이고, 생업을 유지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 교수와 병원을 고소하게 된 까닭은.

“너무나도 황당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명확히 알고 싶다. 자식을 가져 행복감에 젖어있는 상황에서 정자가 바뀌었을지 모르니 유전자검사부터 해보자는 난임 부부가 어디 있겠나. 우리도 혈액형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면 제3자의 정자가 사용됐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친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들이 한 가족임은 변함없지만, 증가하는 난임 부부들이 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건의 진실과 함께 교수와 병원의 책임을 정확히 묻고 싶다.”

- 잠적한 C교수에게 할 말이 있다면.

“우리 가족은 당신을 정말 신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당신이 거짓말한 채 잠적해버린 지금 상황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시술이 잘못됐다면 지금이라도 나타나서 제대로 설명해 달라. 용서하는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당시에 왜 시술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지금도 내가 오해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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