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8일 자택 앞에서의 주금용 할머니의 모습.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2020년 9월 8일 자택 앞에서의 주금용 할머니의 모습.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날짜를 알까, 시간을 알까, 아무 것도 모르제. 그저 날 새서 밥 쪼까 주믄 그놈 묵고 가서 공장에 가서 일허고, 또 낮에 밥 쪼끔 묵고 또 가서 일허고…”

고(故) 주금용 할머니가 구술기록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를 통해 전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군수회사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돼 임금을 받지 못했던 주 할머니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등 지원단체들과 함께 2019년 4월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영원히 판결을 보지 못하게 됐다.

시민모임은 주 할머니가 폐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지난 17일 별세했다고 전했다. 향년 96세.

1927년 10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주 할머니는 1942년 16살의 나이로 일본 도야마에 있는 구수회사 후지코시 회사에 강제 동원됐다.

후지코시는 전국에서 1000여 명이 넘게 강제 동원된 근로정신대 동원 최대 사업장으로, 군수품에 사용되는 금속 제품 공정에 피해자들을 투입했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하며 노역에 투입된 주 할머니는 1945년 광복된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 할머니는 구술기록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 교사의 말에 속아 강제 동원됐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이 2019년, 2020년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사건의 원고는 87명으로, 15건 소송의 생존자는 이날 기준 정신영 할머니, 조동선 할아버지 등 2명뿐이다. 그러나 재판은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소장 송달이 제대로 지뤄지지 않아 5년째 재판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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