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학교 건강상태조사 설문지에 장애 '완치'·'치료 중' 문항 들어가
장애계, "장애는 치료가 되거나 완치가 되는 질환 아니다" 비판
전문가, "조사 문항 가이드라인 필요"

지난 4일 인천 소재 A중학교는 ‘건강상태조사’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완치' 또는 '치료 중'을 선택해 제출하게 했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 4일 인천 소재 A중학교는 ‘건강상태조사’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완치' 또는 '치료 중'을 선택해 제출하게 했다. ⓒ페이스북 캡처

개학을 맞아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묻는 설문조사에 ‘장애 완치' 여부를 묻는 문항이 들어가 논란이 일고 있다. 장애로 영구적 신체변화가 온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이러한 질문이 상처가 된다는 우려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부가 관련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경미 인천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은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본인의 자녀가 다니는 인천 소재 A중학교의 건강상태조사 설문지를 공개하고 문항에 담긴 잘못된 인식을 지적했다. 

해당 설문지의 장애 항목을 보면, 장애 유무를 체크할 수 있고 장애가 있는 경우 ‘완치’ 또는 ‘치료 중’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장애가 있지만 치료하지 않고 있다는 항목은 없는데, 이는 장애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 출신인 조 팀장은 이 글에서 "장애는 병이 아니기에 치료 가능하지 않다" 며 "아이의 신체적,정신적 고유성을 존중해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SNS를 통해 이 문항이 알려지자 “우리도 (같은 조사를) 했다”, “나는 ‘장애는 질환이 아니다’라고 늘 썼다” 등 같은 경험을 한 학부모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대다수의 학교가 개학 직후  신입생들의 질환, 알러지, 장애, 미세먼지 관련 기저질환 보유 여부와 더불어 건강상 요청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비슷한 항목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여성신문과 통화에서 “장애는 치료가 되거나 완치가 되는 질환이 아니다"라며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사람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없어 안타깝다”며 토로했다.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이 저하돼 치료를 요하는 질병과 달리 장애는 영구적인 신체변화이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장애계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복지학회 수석부회장인 김용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들은 본인의 상태를 ‘모자란 사람’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생각한다”며 “이들에게 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질문을 하면 거부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의 한 장면. 이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를 다뤘다 .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의 한 장면. 이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를 다뤘다 . ⓒENA

그러나 장애 관련 잘못된 인식이 담긴 건강상태 설문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태다. 

A중학교는 관련 가이드라인의 존재 여부를 묻는 여성신문의 질의에 “담당교사가 건강상태조사와 관련한 여러 자료를 취합해 만든 조사지”라고만 설명했다. 교육부 역시 “개별 학교와의 소통을 통해 당뇨병이나 희귀난치성질환 등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적절히 지원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지만, 조사 항목에 대해서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권선진 평택대 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장애인복지법상 등록장애인 여부를 묻고 장애유형에 따라 학교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면서 “장애 여부를 떠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적인 건강상태조사가 이뤄지도록 교육부가 각 학교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이나 지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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