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연합뉴스
감사원 ⓒ연합뉴스

감사원이 사교육 업체와 유착한 현직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는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여 교사 56명을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 혐의가 확인된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수사해 달라고 올해 2월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 수·증재 등이다.

수사 요청 대상에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 논란 관련자들이 포함됐다. 해당 논란은 대형 입시학원의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불거졌다.

23번은 지문을 읽고 주제를 찾는 3점짜리 문항으로, 해당 지문은 그 해 3월 베스트셀러에 오른 넛지의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TMI)'의 79페이지에서 발췌됐다.

대학교수 A씨는 2022년 8월 해당 EBS 교재 감수에 참여하며 TMI 지문을 알게 됐고,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TMI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해 수능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평소 교원으로부터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던 유명 강사 B씨는 TMI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 C씨를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평가원의 의뢰로 지난 2022년 8월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는데, 이 교재에 수록돼 있던 고교 교사 B씨의 TMI 지문을 수능으로 출제했다. 이는 교재 집필 중 알게 된 모든 사실을 EBS 허락없이 유출할 수 없다는 EBS의 '보안서약서'를 위반한 행위다.

평소 교사들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어 온 유명학원 강사 F씨는 그 해 8월 고교 교원 C씨로부터 TMI를 지문으로 제작한 문항을 공급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C씨는 TMI 지문을 만든 B씨와 EBS 교재 집필을 하면서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B씨는 C씨가 자신의 TMI 지문을 F씨에게 넘겨준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1타 강사 모의고사와 판박이 논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1타 강사 모의고사와 판박이 논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수능 출제 또는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에 참여한 다수 교사가 사교육 업체와 문항을 거래한 것도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 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여러 번 참여한 고교 교사 D씨는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천여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공급하고 6억6천만원을 받았다.

이 중 3억9천만원은 조직에 참여한 교원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7천만원은 자신이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 고교 교사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 경영하면서 현직 교사 35명으로 문항 제작팀을 구성한 뒤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문항을 넘겨 수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가 EBS 수능 연계 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 빼돌려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돈을 받는가 하면, 사교육 업체에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한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은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하고 금품을 받은 사례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간 학원 등 취업이 제한되는 고등교육법 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법상 위반 시 제재 규정은 없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교육부에 제도 개선 등을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들 외에도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받았다고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 감사위원회 의결 이후 엄중한 책임 문책 등 조치를 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