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작품세계 조명 개인전 ‘도자, 혼을 담다’
세계여성의날 기념...4월21일까지 롯데갤러리 잠실
대표작 등 100여 점...신작 오브제 첫 공개
코로나·러우전쟁·건강 악화 속 예술혼 불태워

박영숙 도예가가 지난 2월29일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개막한 개인전 ‘도자, 혼을 담다’ 현장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박영숙 도예가가 지난 2월29일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개막한 개인전 ‘도자, 혼을 담다’ 현장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빨간 사과, 남빛 가지, 주홍색 호박, 정답게 지저귀는 새들. 박영숙(76) 도예가가 빚은 작고 어여쁜 생명들이 높이 60cm가 넘는 항아리 모양의 탑에 모였다. 자세히 보면 하나의 우주다.

“신에게 바치는 감사의 과일들이에요. 삶에 대한 감사와 전 세계적으로 아픈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지요.”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격화를 지켜보며 품은 소망을 도자기에 불어넣었다. 40여 년간 백자를 빚어 온 작가가 기술과 예술성을 총집약해 만들었다. 까다롭고 고된 작업이었다. “과일, 새 등 오브제는 바로바로 붙여야 했고, 터지고 깨지는 게 하도 많아 열 개를 구우면 완성품을 겨우 하나 건져서야” 빛을 봤다.

박영숙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한 신작 항아리 오브제. 무제, H64cm, 2023.  ⓒ롯데갤러리 제공
박영숙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한 신작 항아리 오브제. 무제, H64cm, 2023. ⓒ롯데갤러리 제공
박영숙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한 신작 항아리 오브제. 무제, H64cm, 2023. ⓒ롯데갤러리 제공
박영숙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한 신작 항아리 오브제. 무제, H64cm, 2023. ⓒ롯데갤러리 제공

이 신작 항아리 오브제를 지금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롯데갤러리가 박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도자, 혼을 담다’ 전을 열었다.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 생활자기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 1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박 작가는 ‘달항아리’를 세계에 알린 한국 대표 현대 도예가다. 세계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인기 작가다.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대영박물관, 미국 시애틀미술관,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하버드대 아서M.새클러박물관, 휴스턴미술관, 벨기에 몰랑벨츠왕립미술관, 캐나다 오타와 정부청사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47년생인 박 작가는 당대 최고 문화 예술 중심지였던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신라의 유적·유물에 관심이 많아 ‘불국사 꼬맹이’라 불렸다. 처음부터 도예가를 꿈꿨던 건 아니다.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배워 만든 백자를 남편이 운영하는 인사동 가게에 전시해 뒀는데, 우연히 이를 본 한국 추상화 거장 이우환 화백이 ‘도예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1980년대에 도예에 본격 입문했다. 전통 백자를 세련되게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박영숙 도예가. ⓒ롯데갤러리 제공
박영숙 도예가. ⓒ롯데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선 박 작가의 대표작 달항아리 7점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티 없이 맑고 매끈하고,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이 아름답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소장한 그의 달항아리가 ‘박물관 최고의 컬렉션’에 선정됐고, 영화 ‘007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 주디 덴치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싶은 단 한 가지’로 꼽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갈라진 틈을 그대로 둔 달항아리도 눈에 띈다. 실패작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우연히 얻은,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면 어떠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번 전시에선 박 작가가 이우환 화백과 협업한 작품을 포함해 찻잔, 주전자, 그릇 등 생활 자기 시리즈 총 100여 점도 선보인다. 일부 전시 공간은 옻칠한 천으로 구획을 나눴다. 박 작가가 깨진 도자기를 옻칠로 이어 붙여 복원한 데 착안했다.

이우환X박영숙, 달항아리, R 69.6 x H 74.3cm, 2017. ⓒ이세아 기자
이우환X박영숙, 달항아리, R 69.6 x H 74.3cm, 2017. ⓒ이세아 기자
박영숙 도예가가 이우환 화백과 협업해 제작한 한정판 식기 세트. ⓒ롯데갤러리 제공
박영숙 도예가가 이우환 화백과 협업해 제작한 한정판 식기 세트. ⓒ롯데갤러리 제공

지난달 28일 열린 전시 오프닝에서 관람객들 앞에 선 박 작가는 “가정주부로 시작해 꿈을 키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자신을 낮췄다. 최근 건강이 나빠져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그는 생을 돌아보면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민 큐레이터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우연히 도예에 입문해 한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박 작가의 삶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다”며 “특히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가장 성숙한 경지에서 빚어낸 항아리 오브제 신작이 감동을 더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롯데백화점의 ‘리조이스’ 캠페인의 하나로 마련됐다. 롯데갤러리는 2022년부터 매년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리조이스 기획전을 전 지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박 작가 개인전은 오는 4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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