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살율·낮은 출생률은 사회비관지표…세월호 참사 이후 개선 안돼
합계출산율 목표 달성보다 육아휴직·돌봄·주거안정 확대 노력 필요
일·가정 양립이 최우선 과제…근로시간 줄이고 돌봄시간 확보해야
인구부 신설, 책임주체 명확하지만 실효성 의문
경제관료 출신 주형환 신임 부위원장, 저출산 정책 재원 해결 기대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 부위원장 ⓒ박상혁 기자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 부위원장 ⓒ박상혁 기자

지난해 잠정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 직에서 물러난 김영미 동서대학교 교수가 퇴임 후 첫 인터뷰에서 “성평등 문제 해결 없이는 저출산(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미 전 부위원장은 “성평등 의제가 이념 및 세대 갈등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기성세대가 변화를 원하지 않고 저항하더라도 사회는 변화가 돼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출생률 반등을 위한 여러 정책에도 하락만 거듭하는 이유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가 개인의 삶에 대해서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 잡았다.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정치가 책임감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사회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다”며 “높은 자살률과 떨어지는 출산율이 이를 명확히 드러낸다. 두 사회비관지표를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저출생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계출산율 목표치가 아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게 하는 환경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남성육아휴직율, 방과후돌봄 이용율, 신혼 및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주거안정성 등에 대해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청년들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터의 변화를 중심으로 청년들의 일·가정 양립을 보장하는 것이 저출생 문제 개선의 최우선 과제라고 짚었다. 그는 “어린이집 무상보육·늘봄학교·베이비시터 등 수많은 정책은 전부 장시간 노동을 전제로 수립됐다”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근무제 등으로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시간을 가져야 부모도 좋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당정이 추진하는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에 대해서는 “저출산 문제의 책임주체가 명확해지고 조직을 재구조화하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면서도 “인구 문제는 전 부처가 유기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인구부가 각 부처의 인구 관련 기능을 전부 흡수하고 관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새로 저고위 부위원장을 맡은 주형환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경제 관료 출신인 만큼 저출산 정책에 투입할 재원 확보와 청년들이 불안해하는 고용·산업 문제 해결에서 장점을 살리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 부위원장 ⓒ박상혁 기자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 부위원장 ⓒ박상혁 기자

다음은 김영미 전 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13개월간의 부위원장 직을 마친 소감은.

“사회복지 연구자에서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게 돼 책임감이 컸는데, 직을 놓고 나서는 중압감이 조금 가벼워졌다. 국민들이 보기에 눈에 확 띄는 성과는 없을 수 있지만, 훗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씨앗을 상당히 뿌렸다고 생각한다. 다시 연구자로 돌아가 지난 1년간 뿌린 씨앗들이 좋은 성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켜볼 생각이다.”

- 임기 동안의 저고위 성과를 평가한다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7년간 저고위 위원장인 대통령의 주재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는데, 임기 동안 치열하게 준비해 대통령 주재회의도 개최했고 올해도 대통령 주재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청년·기업·종교·언론 등과 만나 저출생 문제를 의논할 민관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부영그룹의 ‘1억 출산장려금’ 제도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해 만든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동인구 감소 등으로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율은 소폭 줄었지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사용율은 대폭 늘었고, 보다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오는 3월부터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설치하는 것도 성과라고 보고 있다.

- 갖은 노력에도 출생률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년간 합계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정부의 실패다. 2015년부터 한 차례의 반등도 없이 합계출산율이 하락했는데, 이는 정부가 청년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청년과 아이들에게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라는 의식이 자리잡혔다. 대통령 탄핵 이후로도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정치가 대안을 제시하거나 책임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살률 증가와 출생률 하락이라는 사회비관지표를 개선하지 못한 것이 이 문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지난 1년간의 저고위 활동이 청년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2024년과 2025년 합계출산율 반등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정부의 출생률 회복을 위해 합계출산율 1.0명을 목표로 내걸었다. 

“출산율 목표치 설정은 국제적으로도 반인권적이고 성평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통령도 지난해 주재회의 사전보고 당시 출생율 목표는 반인권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출생율 자체가 아닌 아이를 키우기 어렵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치적·정책적 목표는 필요하다. 남성육아휴직율, 방과후 돌봄 이용율, 신혼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족의 주거안정성 등을 일정 수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잡고, 이를 위한 정책 로드맵을 구상해야 한다."

-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가.

“부모의 일·가정 양립이다. 이것 하나만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가 많다. 어린이집 무상보육과 늘봄학교를 하는 이유, 베이비시터 지원 등 수많은 정책은 모두 부모의 장시간노동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아이가 어렸을 땐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부모가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일터 환경을 바꾸고, 아이가 자라면 학교에서 필요한 만큼 머물 수 있도록 학교를 혁신해야 한다. 또한 긴급한 상황에 얼마든지 돌봄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이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정책이자 사회적 비용과 양육비 모두를 줄이는 방향이기도 하다.”

- 비혼 출산과 파트너십 제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결혼을 선택한 세대는 과거 세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받은 세대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결혼과 육아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자체가 확연하게 달라졌고 가족제도의 변화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다. 지금과 같은 결혼제도를 통한 정상가족이라는 틀만으로는 가족을 만들려는 청년들의 욕구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혼 출산과 파트너십 제도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 당정의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 논의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저고위는 총인원이 40명이 안 되고 사용 가능한 예산도 많지 않다. 현재 인구정책 조직은 여러모로 개편이 필요하고, 정부 입장에서 인구문제를 더욱 가시화할 필요도 있다. 인구부 신설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책임주체가 명확해진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인구문제 해결에 필요한 경제 정책, 복지 정책, 교육 정책 , 주거 정책 등 모든 부처 사업의 일부만 흡수하고 관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불도저’로 불리는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새 부위원장 직을 맡았다.

“인터뷰 직전 주 부위원장과 저고위 방향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연구자 출신인 내가 저출생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을 했다면, 이를 제대로 실행하고 모니터링하는 데에는 추진력 있고 관료 세계를 알고 있는 주 부위원장이 잘 해주시리라 기대하고 있다. 저고위 정책을 수립하는 동안 재원 문제에 자주 부딪혔는데,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장점으로 원활히 풀어나가고 저출생의 근본 원인인 청년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고용·산업 등 거시적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시면 좋겠다.“

- 임기를 마치며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평등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가정 양립의 기반에도 성평등 가치가 깔려있다. 중요한 가치임에도 성평등 의제가 세대갈등이나 이념갈등처럼 돼버린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 기성세대가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변하게 돼있는데, 그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김영미 동서대학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 캠프에서 저출생 관련 공약 디자인에 참여했고, 2022년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회복지문화분과 자문위원으로 합류해 국정과제 설정에 일조했다. 같은 해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맡던 중 2023년 1월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후임으로 제4대  저고위 부위원장 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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