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곁에 서는 변호사 이은의가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을 풀어내듯 사건과 판결을 ‘이은이의 시선’으로 들여다봅니다. 때로는 용기가 필요한 이를 위한 지지자로서 이야기합니다. <편집자 주>

스쿨미투 당사자들은 고발에 나선 순간부터 학내에서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 피해 경험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도 힘든데,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은 더 큰 상처가 됐다. ⓒFreepik
 ⓒFreepik

얼마 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2세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대리구매 해준 대가로 성관계를 한 3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피고인은 SNS를 통해 만 12세의 피해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피해자가 15세라고 소개해 믿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이 범죄를 자백하고 반성한다느니, 범죄이력이 없다느니, 피해자와 합의되었다느니 하는 것들이 양형의 이유로 거론되었다. 12세든 15세든, 피해자는 만 16세도 되지 않은 아동이었다. 어린 피해자 측에 전달된 합의금은 1000만 원이었다.

미성년자 대상 성매매는 중범죄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도록 의율하고 있다. 한편 우리 형법은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한 경우 성인 대상 강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2020년에는 이를 16세 미만의 청소년 피해자에게까지 확대했다. 소위‘의제강간’이라고 일컬어지는 범죄다. 성인들에게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동의여부에 상관없이 간음하면 범죄로 보겠다는 법의 선언이었고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의 반영이었다.

법이 미성년자 의제강간을 의율하는 이유는 아동‧청소년의 미성숙을 악용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아동‧청소년의 성적가치관 등을 왜곡시키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미성년자의제강간의 범죄요건은 폭행협박이 아니라 상대방이 16세 미만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보도된 집행유예 사건에서 피해자는 12세였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15세라고 말해서 15세라고 알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피고인이 적어도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한다는 인식을 했다는 것은 명징하다. 법이 엄단하라는 이런 범죄를 법원이 선처한 주된 근거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정말 용서했을까? 정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서 저만큼 선처된 것일까?

성인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 관련 범죄에서 대개의 피해자들이 미성년인 것 외에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아이들에겐 ‘아이들만의 화법’이 있다. 아이들은 열악하고 미성숙한 상태에 있으니, 가정이나 학교 밖의 나쁜 어른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소위 ‘되바라진’ 언동을 한다. 이건 실상 ‘나는 보호가 필요하다’라는 신호지만, 가해자에게도 이상한 방식으로 신성한 법정에서도 제대로 읽히지 못한다. 가해자는 이런 SOS를 ‘네가 원했어’라는 변명으로 쓰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사는 ‘네가 피해를 자초했어’라고 읽는다. 미성년자가 미성년자라고 불리는 이유를 잊는 순간이고, 16세 미만의 미성년자 피해자의 성범죄 사건에서 폭행협박을 요건으로 삼지 않는 이유를 몰각하는 지점이다.

이런 피해자들이 자라나며 방황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범죄는 이들의 열악한 지위 때문에 쉽게 일어나고, 피해를 입은 후의 삶에 오래도록 악영항을 준다. 제대로 단죄되지 않은 가해자들의 존재나 처벌이력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심지어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사건에서는 합의 결정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게 주어진 합의금이 당장 피해자의 몫이 될지도 미지수다.

앞서 이야기한 사건에서 피고인은 12세 피해자에게 담배를 대신 사주는가 하면 피해자가 15세라는 말을 듣고도 담배 대리구매를 대가로 간음했다. 모두 아동‧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한 범죄였다. 그 피고인이 기소된 후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건넨 돈은 1000만 원이었다. 피해자의 부모는 피고인에 대해 처벌불원의사를 냈다. 그리고 2024년 우리 법원은 그런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금 우리 법원의 시선이 적확한 지점에 머물고 있는지 끊임없이 함께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