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갈레트 방앗간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갈레트 방앗간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19세기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일요일 풍경을 그린 것이다. 지대가 높은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풍차로 운영되는 방앗간이 있었고 부근에 서민들이 살았다. 일요일 방앗간에서 빻은 밀가루로 갈레트라는 빵을 굽고 동네 사람들이 방앗간 공터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춤도 추는 정겨운 풍경이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보고 있으면 인간관계가 만들어 주는 훈훈함과 따뜻한 감성이 살아난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일요일 오후에 이웃들이 모여 갈레트를 나누어 먹으면서 일주일간의 이야기는 물론 이웃집 소식을 서로 나누는 정겨움이 그림에 가득하다. 동네 모임이지만 격식 차린 옷매무새에서 당시 주민들의 품격을 읽을 수 있다. 짝을 지어 추는 춤과 의자에 앉아 나누는 담소에는 가족과는 다른 이웃들의 사랑이 배어있다. 즐거운 감성이 어우러진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에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이 그림에서 경제적 여유로움보다는 풍성한 인간관계의 여유로움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는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성장으로 경제적 풍요로움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반비례해 고독사, 단절, 소외와 같은 단어가 낯설지 않고 가족 해체, 사회적 갈등, 계층 간 배제가 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웃 간 연대의 끈이 약해져 작은 갈등에도 연대의 실이 뚝뚝 끊어지고 관계의 실타래가 쉽게 엉킨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종교단체 등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사각지대와 소외계층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웃을 돌보는 일에 남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자녀를 보듬고 가족 결속력의 구심점이 됐던 여성의 모성성이 사회로 확장돼 약하고 힘없고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 힘으로 모아지길 바라본다. 남성과는 다른 따뜻한 보살핌과 이해와 친화의 여성성이 소외된 이웃을 품어 함께 어울려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면 여성성의 가치가 더 발휘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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