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7-2.jpg

자신이 직접 점토로 빚은 만화 캐릭터들과 함께한 석동연씨. 4컷 만화로 인생의 구석 구석을 드러내고 싶단다.

~a7-1.jpg

석동연씨가 최근 펴낸 단행본 '말랑 말랑-현란한 떡들의 반란'에 나오는 주인공들.

지난 연말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그 누군가 놓고 간 한 일간 무가지에서 동병상련의 만화를 만났다. '마감'과 떼어 살 수 없는 직업상 한 추리작가가 마감 압박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기상천외의 변명과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읽으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추리작가 K의 일상'. 4컷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충분히 얘기가 됐다. 지난 1월 18일 약속장소에서 마주친 작가는 딱 삼십 중반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앳된 '소녀'형이어서 그의 만화 주인공들과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제 만화를 화장실에서 본다는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반가워요. 제일 좋아하는 책일수록 화장실에 비치해 놓고 조금씩 짬짬이 보잖아요. 보고 또 보고 하면서…”

4컷은 인생의 축소판 같아절제 속 창작의 자유 '짜릿'

98년 데뷔…단행본 5권 펴내허영만 '왕팬'…남편도 같은 길

그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4컷 만화 고집 작가다. 아니 “후배들을 위해 길 닦는 심정으로 만화를 그린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4컷 만화에 있어선 거의 선도자적 역할을 해왔다. 98년 신인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뒤 '그녀는 연상' '명쾌! 사립탐정 토깽' 등 5권의 4컷 만화 단행본을 냈다. 그런데 그가 만화가의 길로 입문한 것은 거의 엽기적(?) 수준이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5년 만에 졸업하고, 당시 국내에선 유일하게 만화예술과가 있던 공주대 입학을 위해 체력장과 학력고사를 고스란히 치렀다. 그런데 그 과정이 100% “되게 즐거웠다”고. 원래 대학 입학 당시에도 후에 만화작가로의 길을 위해 국문과, 심리학과, 미대 중 한 곳을 가려 했다가 아버지의 강권으로 약간 길이 어긋나버렸다. 그래도 민중미술 운동에 열심히 참가해 시사용 혹은 대자보용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렸다. 이 작가 역시 우리의 성장기 어느 한 시점처럼 만화라면 모두 닥치는 대로 읽고, 용돈을 아껴가며 끊임없이 만화책을 사고, 책상 밑이나 이부자리 밑에 엄마 눈을 피해 읽던 만화책을 급히 숨겨놓던 추억이 있다. 그는 일찍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역할모델을 만화가 허영만으로 정해놓았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인 친구가 한국인 친구를 위해 자신의 나라를 대신 정죄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스토리의 '새퉁소'를 읽고 일종의 '충격'을 경험했고, 이후 사춘기 때는 “허영만 선생님의 각시가 되겠다”고 되뇌고 다녔다. 물론 허영만은 아니지만, 지금은 같이 만화과에서 공부하던 3년 연하의 남자친구와 결혼해 같은 길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

“후배들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면 되냐고 물으면 '상냥하고 자기 앞가림만 하면 돼'라고 말하곤 했지만 실제 생활에선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원래 만화가란 직업이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밥도 안 먹고,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잘 못 챙기는 직업이죠. 보통 여자들과 달리 서로의 일을 엄격히 구분해 하다보니 너무 개인 플레이가 심해져 이렇게 하다간 너는 너, 나는 나, 거리감이 생길 것도 같아요”

그에 따르면, 남편과 그와는 작품 세계나 작업 습관 면에서 서로 대조적이다. 그는 명랑체 스타일인데 반해 '그 양반(남편)'은 극화 스타일이고, 자신은 “놀 듯이 일하는” 한량 스타일인데 남편은 “정해진 시간 내에 마치는” 성실형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남편에게서 “좀 더 계획적이 돼라”는 잔소리(?)를 조금씩 듣곤 한다.

“2000년 결혼했는데, 남들이 왜 아직도 아이를 안 갖냐고 하면 '저와 상관이 없습니다'해요. 묻는 사람이 절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생각하겠지만…일단 아이를 가지려는 욕망이나 의지가 안 생기고, 낳아서 기를 자신이 없으며, 일에 전념하고 싶어 암묵적으로 남편과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어요. 모르죠. 40대 초반까지는 기회가 있는 것 아닌가요?”

말랑 말랑 우리떡·과일 등점토로 빚으면 아이디어 '불끈'

4컷 만화는 간결성과 응축성이 핵이다. 어쨌든 4컷 안에서 모든 것을 끝내야 하고, 또 절제해야 한다. 그는 4∼5년간 이 훈련을 쌓다 보니 오히려 “4컷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디어를 짜내 시나리오와 콘티를 짜고 원고작업에 들어가기까지 방랑자처럼 이리저리 헤매며 마음에 닿는 정보를 구하기 위해 쥐가 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은 일상이다. 주로 구립도서관에 틀어박혀 온갖 책을 다 펼쳐놓고 빠져든다. 야채와 과일이 의인화된 주인공이면 요리책서부터 당근이나 사과 한 가지만을 다룬 책까지 거의 편집증적으로 찾아 헤맨다. 그의 표현대로 “아이디어를 구걸하는 작업”. 우리 떡을 각각 주인공으로 한 '말랑 말랑'에서처럼 점토작업으로 만화 주인공들을 조몰락조몰락 손으로 만들면서 그나마 머리를 잠시 쉰다.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땐 죽어라고 안 나와 신경성 위염이 생겨버렸어요. 그러면서 터득했죠. 갈 때까지 내버려둬야 어느 순간 마음이 풀어지면서 불현듯 스토리가 생각나기 시작하거든요. 이렇게 스토리가 한번 솟아나기 시작하면 그 순간이 너무 좋고 가슴이 벅차 실제로 만화로 옮기는 순간을 늦추면서 그 순간을 만끽하곤 하죠”

그 자신 자인하듯이 “이젠 더 이상 만화가 입문이 문하생식 도제 시스템도 아니고, (만화과가 많이 생기고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캐릭터 디자인, 플래시 애니메이션, 광고 등 훨씬 길이 다양해졌지만, 배고픈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도대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파파 할머니도 웃고 즐기며공감하는 만화 그리고파

“나이 먹어가면서 늘 내 또래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은 30대 중반에 맞추지만 후에 머리가 허예지면 '황혼의 로맨스'나 '검은 머리 파뿌리' 등의 만화를 그리고 싶다니까요. 실감 나는 얘기도 집어넣으면서요”

현재 그는 월간 '참여연대'에 시사패러디를, '과학동아'에 과학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신대와 독도문제 해결을 위해선 욘사마 배용준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단체를 위해 욘사마가 홍보대사를 하면 어떻겠느냐며 이를 만화로 옮기는 상상에 순간 빠져들었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들의 삶을 보면 밥 먹고 배설하고 잠자고 하는 것과 같이 일하는 게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죠. 눈을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의 생활이자 욕구이며 즐거움이죠. 후배들이 만화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을 고민하면, 예전 같으면 '그래, 무턱대고 해'했지만 요즘엔 '그 길 아니고 다른 길도 많아'하긴 하죠. 그래도 창작의 길로 겁 없이 뛰어들어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가다보면 '내가 가면 그게 길이 된다' 느끼지 않겠어요?”

글=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사진=이기태 기자 leephoto@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