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캠퍼스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다 추락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지난해 7월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하대 캠퍼스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다 추락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지난해 7월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리고 최근까지도 대학생에 의해 발생한 교내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안겨 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완성되는 소위 ‘대학생’이란 존재는 모름지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들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과거 5년(2018~2022)동안 1200건(연 평균 240건)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히도 발생건 수 자체는 해마다 줄 고 있다고 하나, 대학이란 곳은 안전이 우선되어야 할 ‘교육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 한 현상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응방안 마련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현행법에 의하면 대학생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을 연 1회 의무로 받아야 하며 이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각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인권센터이다. 고등교육법에 의해 각 대 학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인권센터는, 교직원·학생 등 학교 구성원의 인권보호 및 권익향상 과 더불어 성희롱·성폭력 피해예방 및 대응, 인권침해 행위와 고충민원에 대한 상담, 사건에 대한 접수조사처리 등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도 50% 정도가 인권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4월 현재 전체 대학의 88.3%만이 센터를 설치하고 있으며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인한 만성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센터의 인력은 센터장 및 2~3명의 구성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무기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탓에 전문가 채용이 쉽지 않다. 센터장 또한 단순 보직 개념으로 인권과 관련없는 비전문 교수가 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함에 따라, 센터 설치 의무화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에는 물음 표가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센터 운영예산도 학교별로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국립대학의 경우 어느 대학은 10억원 이상 의 지원을 받아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는 한편, 일부 대학은 1천만 원을 겨우 넘는 정도에 불 과하다. ‘2022년 대학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력의 충분 정도는 5점 만점에 3점 이하로 그 중에서도 소규모 대학은 2.8점, 대중규모 대학은 2.4점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1000만원 미만이 73.9%로서 학생 맞춤형 콘텐츠를 자체 개발하는 대학은 그야말로 소 수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형편이 나은 대학은 다른 대학이 개발한 콘텐츠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를 재구성 후 사용하는 까닭에 학생들의 교육 참여율은 2022년 현재 54.7%로 매우 낮다. 학생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가족부에서는 2022년부터 대학생 참여율이 50% 미만일 경우 해당 학교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으나, 커다란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 보다 강력한 시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일부 대학들은 학생의 교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바, 고려대는 2017년부터 폭력예방교육 이수가 졸업의 필수요건이며, 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은 교육 미이수자에게 성적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이 대학들의 학생 교육 참여율은 80% 이상으로 높은 반면, 나머지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교육부는 대학들에게 이러한 제도 도입을 강요하지 못하고 권고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2일 마다 1번 꼴로 발생하는 대학생들의 성폭력 범죄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1986년 진 클러리(Jeanne Clery)가 기숙사에서 고문, 강간 살해당한 사건 이후 대학 안전을 위한 법 제정 운동이 일어나 1990년 연방법으로 ‘대학안전법(Clery법)’이 제정된 바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연방지원을 받는 대학은 매년 교육부에 지난 3년간 대학에서 발생한 범죄통계를 제출하고 공개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공개되는 범죄발생 범위도 넓어 캠퍼스·기숙사 뿐만 아 니라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대학 소유의 건물 및 학생단체가 소유·관리하는 건물에서 발생하 는 형사법적 사건, 폭력사건, 약물 및 주류법 위반까지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위반 시 벌금이 부과된다. 따라서 대학들은 폭력예방교육 실시 및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의 안전한 대학 환경 구축을 위한 몇 가지 안을 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학 내 인권센터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 하다. 현행법상 국가와 지자체는 인권센터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 “할 수 있다”고 표기된 임의규정을 “해야만 한다”는 강행규정으로 개정해 재원확보의 주체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둘째, 인권센터장과 전담인력에 대한 자격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전문 인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대학안전법(가칭)을 제정하여 대학의 범죄통계를 공개해야 한다. 범죄통계 공개가 자칫 대학지원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염려도 있겠으나 ’안전한 대학 교육환경 구축‘이라는 사회적 가치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끝으로, 대학에서의 성범 죄 피해실태를 전면 조사하여 발표하는 한편, 폭력예방교육을 위해 정부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 마침 올해부터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대학폭력예방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대학에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제안들의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총 16개로 구성되는 콘텐츠들은 OT·MT 등 선후배 술자리 모임, 단톡방 등 온라인에서의 사례, 디지털 성착취, 교제폭력, 스토킹, 안전이별 등 대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맞춤형 콘텐츠다. 이러한 콘텐츠 보급은 올 한 해에 그치지 말고 매년 대학 생들의 실제 의견을 반영하여 후속 개발 및 보급되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일상에 양성평등·폭 력예방 인식 문화 확산이 자리잡고 ’안전한 대학환경 구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모아질 때, 미국과 같은 ’대학안전법‘ 제정도 단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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