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불꽃』볼프람 아일렌베르거 지음, 밤의책 펴냄
1933~1943년 자유를 위해 투쟁한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 아인 랜드의 인생행로
“보부아르는 해방되고, 아렌트는 고립되고,
베유는 유언장을, 랜드는 출생증명서를 쓴다”

『자유의 불꽃』볼프람 아일렌베르거 지음, 밤의책 펴냄  사진=밤의책
『자유의 불꽃』볼프람 아일렌베르거 지음, 밤의책 펴냄 사진=밤의책

대중철학서로 잘 알려진 아일렌베르거가 2018년에 낸 『철학, 마법사의 시대』는 독자들의 큰 반향을 낳았다. 베냐민, 카시러,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네 명의 남성 철학자가 1920년대의 어둠 속에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었다.

그 후속작인 아일렌베르거의 2020년도 저작 『자유의 불꽃』이 국내에서 번역되어 최근 출간됐다. 이번에는 네 명의 여성 철학자들 얘기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을 파헤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사회혁명가였다가 신비주의자가 된 시몬 베유, 합리적 이기주의 세계관을 표방하는 소설가이자 자본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인 아인 랜드가 그들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1933년부터 1943년까지의 10년이다. 네 명의 여성철학자는 전체주의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선구적인 여성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책은 무미건조한 철학서가 아니라 마치 문학책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으로 네 여성의 삶과 사유의 변천 궤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네 사람의 얘기 모두가 흥미롭지만, 특히 여러가지 면에서 대비되는 대학 동창 보부아르와 베유의 스토리는 극적인 느낌마저 준다. 

젊은 시절 보부아르는 철저한 유아론자였다. 1934년 동료 교사들이 총파업에 나섰을 때 “그들에게 합류할지에 대해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았다.” 파업은 다른 영역에서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연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그런 연대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인생의 그 단계에서 다른 사람의 존재가 도대체 어디에 좋은 것인지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부아르는 자신과 사르트르 두 사람만을 세상의 중심에 놓았다.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전혀 없는 불쾌하고 우스운 혹은 속물적인 인간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유일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했다.” 보부아르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공감하거나 타인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던 시몬 베유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냈다. “그녀는 날카로운 어조로 오늘날 지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먹여살릴 혁명 뿐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문제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이 한 번도 굶주림을 겪은 적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겠네요’. 그것으로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 

그런데 1939년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자 사르트르는 전장으로 떠났다. 보부아르의 평정심은 점차 무너진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데만 열중하던 보부아르는 예전처럼 역사와 현실에 눈감은 방관자로 살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1940년대 들어 보부아르의 사유와 글과 행동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유아론에서 벗어나 새롭게 찾아낸 자유의 개념을 보부아르는 ‘형이상학적 연대’라고 표현했다. “아무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아무도 자신만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내 자유의 진정한 전제 조건은 다른 의식의 자유에 있다. 그것은 좀 더 일관되게 생각한다면, 다른 모든 의식을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에 있다. 정치적으로 이것은 실존적 상호해방이라는 특징 속에 있는 모두를 위한 해방 투쟁의 요구로 이어진다. 각자의 고유한 자유를 위해서, 자유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해서.” 극적이라고 할만한 사유의 반전이다. 

이후 보부아르는 자신의 자유 개념을 소설에 담아내고, ‘사르트르의 추종자’라는 세간의 조롱과는 달리 사르트르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사유의 길을 가게 된다. 케이트 커크패트릭은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에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독자적으로 존재와 무를 사유해왔으며, 사르트르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도 않았다고 명쾌하게 밝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보부아르는 “인간은 그가 자기 자신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슬로건을 비판하며 “우리는 오직 우리 삶 속의 타자들 때문에 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담긴 페미니즘의 고전 『제2의 성』도 1949년에 나오게 된다. 

소르본 대학교 교정에서 만났던 보부아르와 베유는 첫 만남에서 언쟁을 벌인 이후로 직접 만나면서 교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베유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자극이 되었고 영향을 남겼는가를 말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베유의 대표작 『중력과 은총』에는 그녀의 우정관이 나온다. “우정을 욕망하는 것은 커다란 과오이다. 우정은 예술 혹은 삶이 주는 기쁨처럼 무상의 기쁨이어야 한다. 우정을 거절할 때 비로소 우정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대학 시절 보부아르를 향해 계급의식의 부재를 질타했던 베유의 직언 역시 그만의 우정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남을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묘하게 대비가 되는 삶의 변화를 보여줬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날 혁명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실존이라고 했던 보부아르는 나이가 들어 정치적 요구를 위해 사회적 참여를 하는 작가로 변화하고, 사회주의자로서 보부아르의 허약한 계급의식을 비판했던 베유는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하며 ‘은총의 실존주의’로 변화하는 삶의 궤적이다.

베유는 1943년 영국의 요양원에서 스스로 굶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3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는 하나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유와 삶의 경로를 거쳤다. 고등학교 철학교사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공장으로 가서 노동을 한 급진적인 운동가였다. 하지만 스탈린 독재와 나치 독재는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마찬가지이고,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역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파시스트의 잔인한 테러와 사회주의의 비극적 실패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베유는 철학의 영역을 벗어나 ‘은총의 실존주의’라는 종교적 신비주의로 방향을 바꾼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2차 대전 때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는 등 뜨거운 삶을 살았던 베유의 사유가 ‘은총’을 말하는 종교적 신비주의로 귀결된 것 역시 반전이라 할 만하다. 

1940년대의 보부아르는 ‘형이상학적 연대’라는 의미로 자아의 자유를 타인의 존재와 결부시켰지만, 베유는 그것을 일종의 도피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베유에게서 해방을 주는 진정한 목표는 연대해서 타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 초월의 징표인 ‘은총’이 넘쳐나는 자아 포기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는 인간이 신에게 바쳐야 할, 즉 파괴해야 할 어떤 것이다.” ‘자아’는 나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아’가 행하는 모든 것은 선행을 포함해서 예외 없이 나쁘다.”

베유는 말한다. “인간에게는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없다. 그러므로 삶은 찢어질 듯한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살 만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세계로 도망쳐야 하지만 문이 닫혀 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문을 두드려야만 하는가. 문지방에 머무르지 않고 정말로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베유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신봉자와 19세기 전체의 커다란 오류는 인간이 앞을 향해 똑바로 가기만 한다면 공중으로 솟아오르게 될 것으로 믿은 것이었다. 세속에 묶여 있는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찾아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 길은 오직 은총의 행위 속에서만 열린다.

1941~1942년 시기 네 사람의 모습에 대해 아일렌베르거는 이렇게 요약한다. “보부아르는 해방되고, 아렌트는 고립되고, 베유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랜드는 출생증명서를 쓴다.” 보부아르는 세상으로 나갔고, 베유는 스스로 굶어 죽는 길을 택했다. 네 명의 철학자들은 삶도 사유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때로는 조롱당하고 고립되면서도 사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자유와 개인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빼어 닮았다. 이들은 평생 하나의 철학, 하나의 사유에 매달리지 않았다. 반전이라 할만한 많은 변화의 굴곡이 있었다. 인생도 철학도 그것이 순리일지 모른다. 78세의 보부아르가 남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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