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지난달 제19회 박종철인권상 수상
전장연 시위는 이기적? ‘모두를 위한 변화’ 공감 커져
동료들과 함께 만들고 목격할 변화 기대해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출퇴근길 지하철에선 삶의 냄새가 났다. 향수, 담배, 술까지 온갖 냄새가 인파와 함께 휠체어를 에워쌌다. 그 가운데에서 박김영희(62)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생각했다. 치열하게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같이 전철을 타고 복작대지 못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박김 대표는 싸운다. 3살 때 소아마비를 겪은 이래로 휠체어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떠 있는데 아무도 내가 거기 떠 있는지 모르는 낮달 같은 존재”로 살다가, 다른 장애인들과 만나면서 세상에 나왔다.

장애인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배우고 일하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자유로이 다닐 수 없다면 불가능한 꿈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박김 대표는 그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공동대표였다. 장애여성공감 창립 멤버이자 진보정당 정치인으로도 활동했고, 지금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다. 지난 30여 년간 견고한 남성·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내온 싸움꾼이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고자 헌신해 온 공로로 지난달 ‘제19회 박종철인권상’을 받았다. 

“박종철 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제도적 교육도 못 받고 사회적 자원도 없고, 부모님 돌아가시면 앞이 막막한 20대 중증장애 여성이었어요.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나 2000년대에 장애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분이 돌아가신 지 40년 만에 같은 지점에서 만난 거죠.

그분이 말씀하신 민주주의란 민중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 것 아닐까요.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처럼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은 각자 목소리를 내요. 저도 그 한 귀퉁이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저도 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그분을 만나고 있는 거예요. 

결코 혼자 나아갈 수 없는 게 민주주의예요. 사람들끼리 손잡고 함께 가야 해요. 장애운동을 통해 다른 소수자 운동과 만나고 연대해 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더 부지런해야 하고, 참고 기다려 줄 수도 있어야 해요.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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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영희의 투쟁하는 삶 (2023년 박종철 인권상 수상 기념 영상) / 전장연

더불어 살자는 장애인 호소에 ‘폭력시위’ 낙인찍어
맞설 전략은 ‘비폭력 불복종 버티기’
 

희망찬 포부에도 장애운동을 가로막은 벽은 높다. 현 정부 들어 장애인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서울시는 올해 예산안에서 최중증·탈시설 장애인 400명이 참여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을 모두 없앴다. 탈시설을 지원하는 ‘거주시설 연계 장애인자립지원’ 예산 19억원도 삭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자,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원천봉쇄’에 나섰다. 

시위하던 동료 활동가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혜화역과 장애인단체 사무실 부근엔 경찰 버스가 늘 줄지어 서 있다. “우리가 범법자들인 양 경찰차가 상주하며 계속 지켜보고 있죠. ‘전장연 전용 경찰서 하나 만들어지겠다’고 우리끼리 그래요. 낙인찍듯 하니까 참담하기도 하고요.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장애 활동가들이 2001년 10월 31일 서울 종로 거리에서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며 사다리와 쇠사슬로 몸을 고정한 채 기습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장애 활동가들이 2001년 10월 31일 서울 종로 거리에서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며 사다리와 쇠사슬로 몸을 고정한 채 기습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전장연 지하철 시위의 역사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대 장애인 부부가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지하철을 탔다가 리프트에서 추락했다. 장애인들은 철로 위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스를 막고 지하철에 오르며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으나 여전히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은 86%만 확보됐고, 저상버스의 도입률도 목표치를 밑돈다. 장애인들이 여전히 시위하는 이유다.

“우리는 폭력을 써 본 적 없어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해 왔어요. 제가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한 게 버티기예요. 경찰들이 힘으로 몰아내면 몰려났고, 들어내면 들려 나왔어요. 다만 그 자리로 계속 돌아갔고, 거기에서 버텼을 뿐이죠.

전장연 출근길 시위를 두고 ‘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느냐’, ‘왜 바쁜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느냐’는 분들이 계세요. 그만큼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은 거예요.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게 뭔지 모르니까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게) 불편한 거죠. 출근 시간대는 가장 많은 이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시간이에요. 우리가 더불어 살려면 감수해야 하는 게 뭔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산이 얼만데’ ‘이기적 장애인들’ 싸늘한 반응도
점점 ‘모두를 위한 변화’ 공감·지지로 바뀌어

 

박김 대표는 낙관을 잃지 않는다. 동료들과 함께 만들고 목격할 변화가 더 남았다고 믿는다.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 장애인을 위해 그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니 이기적이다.’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면서 부딪힌 반응이에요. 그때 우리는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도입,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요구했어요. 싸늘한 반응에도 계속해서 요구하고 철로에 내려가서 죽을 각오로 싸웠죠. 다 같이 연행돼 구치소에도 갔고요. 그렇게 얻어냈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지하철을 타는데 한 청년이 와서 인사를 해요. 그때 이동권 투쟁 현장에 노조 소속으로 연대하러 왔대요. 그러면서도 ‘예산이 그렇게 많이 드는데 되겠냐’고 생각했다는데, 나이 들어 본인이 유모차를 끌게 되면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이) 장애인만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고 느꼈대요. 또 한번은 저상버스에 탔어요. 휠체어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이 제게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나면서 큰 소리로 ‘이런 거 너무 싫어’ 했어요. 그러니까 한 할머니가 맞받아치셨어요. ‘이 버스는 휠체어 이용자들이 먼저 타야 하는 버스야. 내려서 다른 버스 타고 가던가.’ 기쁘고 보람을 느꼈죠.

전장연의 아침 지하철 선전전 때 학생들, 시민들이 힘내라고 과자와 초콜렛을 주고 가세요. ‘힘내세요’라고 쓴 메모지를 건네고, 주먹을 들며 ‘투쟁!’하고 지나치는 시민들도 만났어요. 우리를 지지하는 침묵도 있구나 싶어서 기뻐요.”

박김영희 대표는 1995년 장애여성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로 처음 활동을 시작해 장애여성공감 창립에 함께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영상 캡처
박김영희 대표는 1995년 장애여성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로 처음 활동을 시작해 장애여성공감 창립에 함께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영상 캡처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자신을 생존자라고 얘기했다. 박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너는 나 죽기 전에 같이 죽자’, ‘나 죽을 때 같이 죽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제 나이가 60살이 넘은 지금도 이 말은 수많은 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되풀이 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신문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자신을 생존자라고 얘기했다. 박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너는 나 죽기 전에 같이 죽자’, ‘나 죽을 때 같이 죽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제 나이가 60살이 넘은 지금도 이 말은 수많은 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되풀이 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신문
남성·비장애 중심적 운동사회서

‘장애여성의 길’ 고민·실천

박김 대표의 투쟁은 남성·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자신만의 길을 내려는 싸움이기도 했다. 1995년 장애여성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로 처음 활동을 시작해 장애여성공감 창립에 함께했다. 199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장애여성 리더쉽포럼에 한국대표단 단장으로 참여하는 등 국제 교류에도 힘썼다. 

차별과 폭력 앞에 더 무방비한 장애여성의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힘써 왔다. 2000년 강릉 지역 남성들이 지적장애 여성에게 7년간 성폭력을 저지른 일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김 대표는 장애여성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상담소를 운영했다. 

“반성폭력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던 시절, 장애여성공감 대표로서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저 같은 사람은 약간은 경계와 놀림의 대상이랄까, 그런 위치에 있었어요. 회의하다가도 ‘이렇게 말하면 (여성주의 관점에서) 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돼요?’ 같은 소리를 들었죠.”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장애여성 운동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저를 좁은 영역에 한정하는 것”이라면서도, 더 많은 여성들에게 충분한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열심히 일하는 장애 여성들이 참 많아요. 알고 보면 전장연은 여성의 힘으로 움직이거든요.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물론, 전장연 집행부는 거의 여성들로 구성됐어요. 비장애 활동가들 중에도 여성이 많고요. 미디어가 그들을 제대로 조명하질 않아요. 카메라도 마이크도 여전히 남성을 향하는 경향이 있죠.

밖에서 보면 박경석 대표가 눈에 띄죠. 통찰력, 전략, 리더십 등 장점이 많은 분이고, 조직적으로도 우리의 필요로 박 대표를 내세운 것도 있죠. 저도 최전선에서 싸웠어요. 이를테면 (이동권연대 시절) 박경석 대표가 단식투쟁을 할 때 전 집행부를 이끌었어요. 내 체력으론 (단식투쟁이) 안 될 줄 알았으니까. 하하. 장애인들이 삭발하고 한강대교를 기어서 넘어갈 때도 제가 앞장섰죠.”

박김영희 대표는 2006년 활동보조서비스제도화 공동투쟁단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장애 활동가들과 함께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투쟁에 앞장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영상 캡처
박김영희 대표는 2006년 활동보조서비스제도화 공동투쟁단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장애 활동가들과 함께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투쟁에 앞장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영상 캡처
 
치열하게 싸우고 일하는 장애여성들

제대로 조명돼야

그는 수평적이고 유연한 ‘장애여성 리더십’을 지향한다. “‘여성운동이 정치권에, 남성들이 주도해 온 세계에 들어가서 권력을 갖게 되면서 남성들과 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단순히 ‘여성 상위’가 아니라 어떻게 평등한 세상, 새로운 가치와 문화와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 않느냐. 평범한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고 보여줘야 한다고요.

장애여성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장애여성만의 가치와 방향을 고민하고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되려는 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고민해야죠. 더 섬세하고, 억압적이지 않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살기 위한 운동을 이야기해야죠.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권력 없는 사람들이 ‘우린 다 평등해’ 하는 게 너무 비굴해 보이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누군가가 내게 편안함을 느끼면 되겠죠.”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2016년 3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광윤 서울시선관위 관리과장에게 '투표소 접근성 확보', '수화영상 및 자막 제공' 등 참정권 확보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2016년 3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광윤 서울시선관위 관리과장에게 '투표소 접근성 확보', '수화영상 및 자막 제공' 등 참정권 확보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023년 7월28일 국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부개정법률안 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측 끝에 박김영희 대표가 있다. ⓒ최혜영 의원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023년 7월28일 국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부개정법률안 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측 끝에 박김영희 대표가 있다. ⓒ최혜영 의원실
장애인도 차별 없이 영화 볼 권리 등
일상 속 차별 개선도 중요해
 

장추련 대표로서 그는 장애인의 일상 속 차별을 지적하고 바꿔 나가는 활동에 힘쓰고 있다. 휠체어 장애인은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좌석을 선택할 수 없고 맨 앞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현실, 팔걸이 없는 제주공항 장애인 화장실 등 문제를 이야기했다. 필요하면 소송이나 인권위 진정 등도 제기하며 싸운다. “‘사람의 기준’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다음 국회에 진출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에 초점을 맞춘 탈시설 정책·제도 마련도 강조했다. “첨예한 논쟁이 있지만, 사람을 시설에 넣어놓고 살라고 하는 게 뭘까 고민하게 돼요. 우리 친인척이나 주변인들도 제가 독립해서 살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2000년도 들어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되고, 제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너 정도면 당연히 독립해서 살 수 있어’ 해요. 제 장애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제도와 인프라가 생기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의 개념이 바뀐 거예요. 지능지수가 아니라, 조건과 환경에 따라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의 정의도 달라질 수 있는 거지요. 지원제도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일이 아니에요. 장애인이 일단 시설을 나와서 살아보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게 돼요. 그렇게 제도를 만드는 거예요. 시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없어...가장 중요한 건 사람

서로 많이 기대는 새해 되길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내가 부족한 만큼 사람이 더 소중해요. 무엇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고,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두운 시기지만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한 발이라도 내디딜 수 있다고 믿어요. 앞이 안 보일 땐 옆에 있는 사람을 믿고, 붙들고 가면 돼요. 우리가 하는 일은 희망을 만드는 일이고, 우리 그냥 쓰러지지 않을 거잖아요. 새해엔 우리 서로 많이 기대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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