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민의 W초대석]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가 정신건강 컨트롤타워
61년 만에 첫 여성 센터장
자살률 증가는 고용률과 관계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립정신건강센터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립정신건강센터

40여년간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헌신한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을 만났다.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곽 센터장은 불모지와 같던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분야의 개척자로 지역정신건강센터의 설립과 설치, 제주도 정신건강센터장, ‘스쿨닥터’의 모태격인 학교정신건강사업 등 공공정신건강의료사업에 헌신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정신건강을 더 이상 개인 문제로 두지 않고 주요 국정 어젠다(의제)로 삼아 해결하겠다”며 예방과 치료,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재설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내년 3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국민정신건강의 정책적 대전환기에 현장에서 국민적 관심을 어떻게 담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립정신건강센터라는 이름이 낯설다. 역할에 대해 말씀해 달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1962년 국내 최초의 국립정신병원으로 출발해 1982년 국립서울정신병원, 2002년 국립서울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2016년 국립정신건강센터(이하 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센터는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으로 조직과 인사 등에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책임운영기관이다. 센터는 정신건강증진을 통한 국민행복 실현을 목표로 정신건강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의료부, 정신건강사업부, 정신건강연구소,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갖추고 국민 정신건강 증진의 컨트롤타워로써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의료부는 정신응급병동, 입원병동, 개방병동, 외래는 성인, 노인, 소아청소년정신과, 낮병원, 정신사회재활 등 치료에서 재활을 담당하고, 정신건강사업부는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과 인식 개선사업, 지역사회 정신건강 복지사업을 수행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지원하고 있다. 정신건강연구소는 R&D(연구개발)관리, 정신건강실태조사와 정신건강 코호트 DB 관리 및 분양 환경 구축을 위한 노력, 정신질환의 예방 및 효율적인 치료와 재활에 대한 개선과 발전을 위해 매년 정신의학적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집단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기구로 2013년 재난 현장을 방문해 위기 대응 활동을 펼쳤던 심리위기지원단 역할을 확대해 2018년 4월 개소했다. 찾아가는 재난심리지원 서비스인 ‘마음 안심버스’ 등으로 초기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재난 이후 일상생활 복귀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신건강교육과에서는 정신건강사업 수행을 위한 정신건강 전문인력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지난 1962년 국립정신병원 설립 이래 61년 만에 최초의 여성 센터장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어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알리고자 인터뷰에 응했다. 그간 공공정신건강 의료사업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다. 진료·연구·임상·행정을 두루 거친 저의 경험과 지식을 임무에 바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1986년에서 1999년까지 의사로서 13년간 이곳 센터의 소아정신과장으로 근무했고 제주대학교병원의 1호 임상교수로 시작해 20여년 간 재직하면서 제주의과대학과 병원의 기초를 닦는데 함께 했다. 소아정신과장 재직 시, 소아·청소년기 아동의 발달시기에 맞춘 정신건강관련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대 의과대학 재직 시에는 국가적으로는 중앙지원단의 운영위원으로 보건소 내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의 개설 초기부터 참여했고, 초대 제주도 정신건강센터장, 학교정신건강의학회장 등을 맡는 등 ‘공공정신건강의료사업’을 위해 힘써왔다. 특히 학교정신건강사업에 특별한 관심과 사명감을 갖고 직접 학교에 방문해 학생을 상담하는 일도 담당했다. 개업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제외하면 제주도의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저 한 명이었다. 아이들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당시 교육감님의 선도적 정책으로 예산지원을 받아 소아정신과 펠로우 트레이닝(fellow training)을 할 수 있었는데, 수련한 의사선생님들이 있어 당시 학교정신건강증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정신건강관리는 물론 위험도 있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개선을 위해 위기개입, 연계체계를 활용하는 학교정신건강사업이 제주도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스쿨닥터, 마음건강닥터 등으로 확장·발전해 연계·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안착한 것은 큰 보람이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경제적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도 선진국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선입견과 편견이 꽤 있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민도가 높아지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올바른 정보를 알면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정신건강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정신건강 문해력’이라고 하는데 선진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가르친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스스로 정신건강 상태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센터는 홈페이지, 블로그, 웹툰, 유튜브, SNS, 카드뉴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올바른 정보를 주어 국민의 ‘정신건강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7.8% 정도가 정신건강의 문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가벼운 우울증, 불안장애 등은 치료받으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1% 정도의 심한 조현병, 심한 양극성 장애(조울증) 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가벼운 정신건강질환이 제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이는 뇌 중추신경계와 연관된 질환이라는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빨리,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흔히 ‘마음근육을 키운다’고 표현하는데, 스스로 정신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힘, 다양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을 회복력이라고 한다. 의사소통·관계회복 능력, 괴롭힘·따돌림에 대한 대처 등을 배우면서 심리적 예방주사, 심리적 방역에 관심을 두면 좋겠다.”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립정신건강센터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립정신건강센터

-여성의 정신건강 증진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여성들은 젠더적 측면에서 고유의 특성 때문에 취약점이 있다. 우울과 불안에 더 취약하다. 미디어를 통해 바디 이미지와 관련해 외모차별을 암시받고 끊임없이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받기 때문에 식사장애, 섭식장애가 나타난다. 둘째, 모성과 관련된 돌봄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크다. 최근 남성들이 함께 하지만 여전히 기대치가 높은 사회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취업에서의 차별이다. 전문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의료 CEO 모임에 갔더니 여성은 저 혼자였다. 가정법원과 협업할 때 보니 여성 판사는 많아졌어도 법원장은 보지 못했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 여성이 불리한 것이 현실이다. 대책이라면 우선 외모 컴플렉스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양육자로서 아이를 양육할 때는 있는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또 여성이 사회생활 속에서 리더가 되려면 좋은 의미의 정치를 알아야 하는데 정치는 그룹으로 이루어지므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종 여성리더십 강의가 있을 때면, 여성의 심리적 발달을 위해서는 도전하고 경험하면서 자기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을 통해 얻은 파워는 남성이 없어지면 사라진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를 넘어서 우선 자기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태어나 3년의 영유아기는 아동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여성의 우울감은 양육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양육환경은 물론 가정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여성에 대한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통계를 보면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고용률과 관계가 깊다. 가족과 떨어져 도시에서 홀로 원룸에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 코로나19 이후 일을 잃어 소외되고 희망이 없고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 여성들에게 일어난다. 사회는 삶의 이유를 제공하고 적절한 도움과 연계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학령기, 청소년기 자녀의 정신건강을 위해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가 앞서 무엇을 하려 하면 부작용이 나기 쉽다. 청소년은 부모가 자신의 자율성을 침해할 때 가장 힘들어한다. 앞서서 무엇을 해주려고 하기보다는 자녀가 도움을 청했을 때 잘 도와주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약한 면,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특성이 있으니 아이들이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수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차별에 민감한데 성적(成績), 외모, 성(性), 빈부격차 등이 있다. 청소년 시기는 뇌의 발달에서 고등 중추가 완전하게 발달하지 않아 정신건강에 취약하다. 최근 SNS 상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행복배틀’은 실제 상황이 아님에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져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즐거운 상호교류’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일과 후, ‘열손가락 감사하기’ 같은 놀이와 대화를 통해 온전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충만한 행복감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 좋았던 것을 더 크게 기억하는 ‘부정편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므로 현실에 대한 감사와 서로에 대한 칭찬, 격려 등을 통해 긍정성을 가지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지난 10월 청년들의 정신건강증진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해소를 위해 ‘2023 청년정신건강대축제’를 개최했다. 축제의 성격과 성과는?

“청년은 정신질환 및 자살의 위험집단인 동시에 조기치료 및 인식변화 기회의 집단이기도 하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과 공동 주관하여 매년 ‘대학생 정신건강 서포터즈 영마인드’를 모집, 정신건강리더를 양성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부정적 인식 해소, 청년층의 정신건강에 대한 올바른 인식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신건강 증진사업을 하고 있다. ‘영마인드(0mind)’는 청년(young)의 정신건강(mind)을 증진한다는 의미와 함께 정신건강(mind)에 대한 편견을 제로로 만든다(0)는 의미로, 2019년 1기가 발족한 이래 2023년에도 100팀(684명)이 ‘영마인드 서포터즈’로 선발되어 6개월간 캠페인과 모니터링, 온라인 활동 등을 펼쳐 청년 정신건강 증진 및 인식개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 센터의 주요사업을 소개해달라.

“사실 코로나19 이후 센터는 다른 공적 의료기관과 같이 기존의 역할과 기능을 일시 정지하고 코로나감염 정신질환자를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해왔는데 센터의 본래 기능과 역할을 정상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지난 12월 5일 발표한 ‘정신건강정책의 혁신방안’의 근간은 예방부터 회복까지 지원할 수 있는 ‘마음의 돌봄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향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아젠다를 개발하고 정책을 수립해 잘 연계되고 잘 작동될 수 있는 정신건강 돌봄시스템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매해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정신건강주간에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는 ‘K-컬처와 정신건강’을 주제로 심포지움, 토크콘서트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가졌는데 앞으로도 정신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