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랑 산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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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기록이 필요한 2023년

유독 신기술의 기세가 거센 한 해였다. 챗GPT가 나오면서, 기계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인간 사용자 못지않게 창작까지 뚝딱 해내는 AI 기술을 보며 시장은 환호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급속도로 투입해 더 나은 성능, 더 높은 효용을 선보이는 모델과 서비스를 연달아 출시했다. 지난 4월까지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빅테크 기업 중심의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온 시장 경색과 함께, AI로 인한 기술 실업 또한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상반기에 실리콘밸리 중심의 경제 침체로 인한 대규모 해고(레이오프)가 주로 벌어졌다면, 하반기에는 기술의 인력 대체로 인한 조용한 해고가 이어졌다. 이제는 AI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 시절이 아니라, AI가 바꿀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을 검토하는 게 더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담론이 변화했다. 이 모든 상황의 전환과 사상의 변화가 2023년 한 해 동안 급박하게 진행됐다.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 지켜봐야 할 동력

이 흐름에서 단연 중요했던 부분은 다음 세 가지라고 본다. ①기술적 해자(장벽)가 크게 낮아진 것, ②무엇을 만들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점, 그리고 ③대화형 인터페이스로 더 강력하게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먼저 기술 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누구나 더 쉽게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을 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들었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여러 오픈소스와 상용화된 API를 활용해 저렴하고 빠르게 제품화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 수준이 그저 프로토타이핑, 즉 상품화 이전 단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상용화도 가능한 수준으로 꽤 정교한 제품화가 가능해졌다.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와 질서, 구조 정도만 파악하고 있으면,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 서비스를 활용해 뚝딱뚝딱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제작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이렇게 되면, 차별화된 기술적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는 이른바 ‘퍼스트 무버’ 전략이 더 이상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픈AI(OpenAI)가 이달 초 공개한 새로운 GPTs 서비스를 활용하면 누구나 나만의 맞춤형 챗봇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챗GPT플러스 개인 가입자와 엔터프라이즈 고객만 이용할 수 있다. ⓒOpenAI 홍보영상 캡처
오픈AI(OpenAI)가 이달 초 공개한 새로운 GPTs 서비스를 활용하면 누구나 나만의 맞춤형 챗봇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챗GPT플러스 개인 가입자와 엔터프라이즈 고객만 이용할 수 있다. ⓒOpenAI 홍보영상 캡처

이런 가운데,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동력 중 하나인 개인 데이터 수집이 훨씬 더 용이해졌다. 여러 규제가 있지만, 사람들은 기계와 말로 대화할 때 더 편히, 더 쉽게 상호작용을 한다는 경향성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금광을 캐는 더욱 획기적인 도구가 개발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특히 B2C 업체 입장에서 자연어 대화 기반 시스템은 떼어놓고 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기술 인프라가 됐다.

결국 빅테크가 이긴다?

올해 특히 많은 창업자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긴 지점은 빅테크 기업들의 ‘쓸어담기’였다고 본다. 스타트업들은 가벼운 아이디어를 매우 발 빠르게 실험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런칭해, 고객들을 모아 시장 규모를 키운다. LLM이 막 나왔을 때도, 많은 스타트업이 이를 활용해 당장 상용 가능한 아이디어부터 빠르게 시장에 실어 나르는 실험을 했다. 시장이 반응하는 모델을 확인해 매출을 일으키는 순간에 다다른 업체가 많았다.

그러나,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모델을 이미 가진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서비스 기능들을 모두 품은 플랫폼이 공개됐다. 챗봇계의 ‘앱스토어’ 같은 모델인 GPTs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S365 코파일럿 또한 이미 많은 스타트업이 ‘개인 또는 기업의 문서를 엮어 지식을 생성하는’ 모델을 자사의 클라우드에 적용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사용자를 다양한 층위로 확보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과 스타트업의 경쟁이 공평할 수는 없다.

여기에 구글, 애플같이 생활 밀착형 디바이스와 운영체제(OS)를 갖춘 회사들은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개인정보를 확보해 개인화를 더 잘 해내고, 이로써 더 만족스러운 성능을 내서, 더 많은 사용자를 자사의 생태계에 진입시킬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퍼스트무버로 아이디어 기반의 훌륭한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 런칭한 스타트업이 있다해도 다른 업체들이 아주 빠르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적 저변이 마련됐다. 그리고 시장 규모가 충분히 크다는 게 증명되면, 빅테크들 또한 자신들의 자산을 무기 삼아 진입할 수 있다. 마진을 낮추는 가격 할인 경쟁이 일어나도, 더 많은 서비스를 뭉쳐서 할인할 수 있는 플랫폼 회사가 우위를 차지하는 질서가 마련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아웃룩, 팀즈, 파워플랫폼 등 자사 업무 생산성 도구 전반에 적용하는 AI 시스템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Microsoft 365 Copilot)을 지난 3월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아웃룩, 팀즈, 파워플랫폼 등 자사 업무 생산성 도구 전반에 적용하는 AI 시스템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Microsoft 365 Copilot)을 지난 3월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지난 6일 공개한 거대언어모델(LLM) ‘제미나이’(Gemini). ⓒ구글 딥마인드 웹사이트 캡처화면
구글이 지난 6일 공개한 거대언어모델(LLM) ‘제미나이’(Gemini). ⓒ구글 딥마인드 웹사이트 캡처화면

AI 자체에 열광하기보다 ‘문제 풀이’에 집중해야

올해는 AI 기술이 너무 흥한 탓에, 모두가 이 기술로 무엇을 만들지를 고민하는 게 트렌드였다. 그보다는 각 분야에서 기존에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해 새 도구(AI 기술)로써 패러다임 시프트를 시도하는 상상력이 중요하다. AI가 글을 잘 쓰는 것, 시뮬레이션을 잘한다는 것, 이물질을 빠르게 잘 걸러낸다는 것 정도의 표면적인 기능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기술 그 자체를 생각하기보다, 도메인의 묵은 문제를 푼다는 지점을 다시 짚어야 할 때다. 창업의 시작이 문제 인식과 정의 내리기에 있는 만큼, 문제 그 자체로 돌아가는 접근법이 다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킬 것이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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